괴담

[괴담] 캠코더. ssul

오링어 2022. 1. 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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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늦은 시간이었다. 날은 8월인데도 덥지 않았고, 좋다기에는 구름이 많았으며, 나쁘다기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날 모인 이유는 아마 광재의 공모전 당선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였을 거다.

기껏해야 열댓 명의 인원이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민승이는 현대카드에 취업했다더라, 가람이는 이름 따라 강 따라 해군에 입대했다더라, 하는 친구들 이야기도 몇 년 만에 들었다.

한참 놀다 파티의 끝이 보일 때쯤, 주민이의

"어, 나 가야겠다."

를 시작으로 하나둘 파티장 컨셉의 별장을 떴다.

집이 근처인 광재와 나는 몇몇 친구들을 배웅해주고, 돌아보니 딱 한 명만 남아 있더라.

"지원이 너는 안 가도 돼?"

올 때 같이 들어온 태욱이도 이미 자리를 떠났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 너네랑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서."

지원이는 약간 연한 갈색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입은 빈 와인잔에 꽂힌 빨대를 문 채 대답했다.

"요 앞에, 작은 시화전 겸 전시회가 있거든. 나 내일모레면 다시 서울 가는데, 그 전에 꼭 가보고 싶어."

나와 광재가 시계만 쳐다보며 대답을 않자, 그녀는 혼자서 말을 이었다.

"역시 안될까? 사실 좀 빨리 끝났으면 억지로라도 가쟀을 텐데, 다들 왜 그렇게 잘들 마시는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모습에, 나와 광재는 못 이기는 척 차에 올랐다.

"지금이 여덟 시 반이니까.. 가는 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그냥 보고만 와도 열시 반이야."

광재는 조수석에서 투덜대듯 내뱉었다.

"미안해~ 그치만 이 동네에 오승환 사진작가 갤러리가 있다는데, 못 보고 가면 너무 슬프잖아."

그래, 아마 지원이의 직업이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는 말을 어렴풋 들은 것도 같았다.

이왕에 가는 길이면 좋은 포장도로면 좋을 텐데. 이만한 시골 길이라 취객 둘을 태우고 한 시간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야, 니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멀미 안하겠냐?"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광재는,

"어어~ 나 멀미 안 해. 취하지도 않았고."

하는 말도 안되는 허세를 늘어놓았고, 지원이는,

"빨대로 마셔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라는 웃음도 나오지 않는 변명을 해댔다.

내가 걱정이 되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내 몸인데 말야.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는 차에 시동은 걸리고 네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시작했다.

"어? 이쪽도 길이 있나?"

네비게이션의 빨간 화살표는 내가 알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짚었다. 신작로가 난 모양이었다.

"이만한 촌에 도로를 내 놨나."

부디 취객들이 잠들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혼잣말을 해댔지만, 반응이 없는 게 아마 모두 피곤한가 보다.

'뭐, 그래도 비포장도로 아닌 게 어디야.'

하는 생각으로 도로를 쭉 달렸다.


도중 둘이 몇 마디를 나눈 것 같긴 한데, 분침이 시침을 앞지르는 순간부터는 둘 다 아예 뻗어 있었다.

의자까지 뒤로 쭉 젖힌 채로.

내가 술을 많이 마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다시 운전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 끼익

네비게이션은 안내를 마쳤고, 주변엔 언제 지었는지 모를 손바닥만 한 교회가 있었고, 멀리 농장이 보였고, 또, 불을 끄고 문을 닫은 상점도 몇 채 보였다.

한 시간 거리를 45분 만에 도착했으므로, 오는 길이 얼마나 뻥 뚫려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광재를 흔들어 깨우고, 운전석 뒤에서 조수석 뒤로 쿠션을 베고 길게 누워있는 지원이도 깨웠다. 다행히 출발할 때보다는 확실히 술이 깨 있는 게 눈에 보여 조금 안심이 됐다.

"야~ 의림이 운전 잘하네. 우리 잘하면 SNL 볼 수 있겠다?"

"니네 갈 때는 나 혼자 운전하게 두면 안 된다, 중간에 버리고 갈 거야."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원이를 돌아봤다. 볼일이 있는 건 그녀였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교회 앞을 그저 서 있었다.

"뭐해? 사진전 여기라는데 여기 아니야?"

"아니.. 여기 맞는데, 저거 봐."

교회 입구에는 낮은 통행 제한선이 쳐져 있었고, 걸려있는 팻말은

[토요일, 일요일은 교회 예배로 인해 사진전은 쉽니다.]

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허탈감에 빠져 있는 그때, 광재는 잠깐 사이 '화장실 좀 쓴다'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에는 문자가 왔다.

[야, 안에 아무도 없다. 갤러리도 열려 있어. 그냥 들어와.]

문자를 받고 다시 보니, 확실히 교회는 물론 주변 전체가 어두웠고, 그나마 닿는 빛은 저 멀리 능선 너머에서부터 오고 있었다.

나는 지원이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야, 들어가자."

하고 앞장섰다. 낮은 철책 너머로 보이는 정문 바로 옆에는 관리실이 있었는데, 뜻밖에 그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므로 돌아서 옆문으로 향했다.


정말 낡은 교회라는 걸 느낀 게, 보통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도 청소만 잘 되어 있으면 어두울 때는 새것처럼 보이는 법인데, 이 교회는 청소가 잘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빛 한점 없는 이 순간마저도 낡아 보이는데다 낡은 냄새까지 났다.

안에는 어둠 뿐이고 광재는 아까부터 전화를 안 받으므로, 핸드폰 손전등을 켠 채로 한발, 한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이었기 때문에, 내가 앞장을 서고 손을 잡은 채로 지원이가 뒤를 따랐다.

자연스럽게 가장 중앙에 있는 대예배실로 향하게 됐는데, 광재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예배실은 긴 의자들이 각을 맞추고 있었고, 정면에는 예수상과 교탁이 있었다.

어두운 와중에 맨 앞의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는 게 어렴풋 보였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쟤가 기독교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광재야."

하고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불러도 미동도 않았으므로 손으로 의자를 짚어가며 천천히 다가갔다.

거의 네다섯 걸음 안쪽으로 왔을 때, 다시

"이광재."

하고 불렀다.

그리고 광재는 대답을 했는데, 안 놀랄 수가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어, 나 여깄어."

하는 소리는 뒤쪽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광재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오고 있었고,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다시 의자를 봤지만, 의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어두워서 손전등 찾는다고 나가 있었다. 안에 불이 켜지기는 하는데 관리실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불 켜면 걸릴 거야."

아직도 쿵쾅거리는 심장을 '어두워서 잘못 본 거겠지.'하는 말로 억지로 안심시키며 사진전이 열리는 옆 동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아무 말도 않던 지원이는 사진을 보는 동안에는 그렇게 말을 해댔다. 그림 같은건 그냥 슥 지나치면서도, 사진이 나오면 이 사진은 초점 거리를 어떻게 잡았느니, 이 사진을 찍은 카메라와 아까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어떤 차이가 있느니 하며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으므로 듣는 척만 했지만, 광재 녀석은 꽤나 열심히 듣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편광 필터라는 걸 써서 주변의 색이 선명하게 나뉜다는 거지?"

"여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잠깐만, 나 캠코더 있어."

그러면서 옆으로 매는 가방에서 작은 캠코더를 꺼냈다.

"찍어서 밝기 높이면 지금보단 잘 보일 거야, 이따 설명해 줄게."

어두운 와중에 뭐가 그렇게 잘 보이는지, 둘은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시간은 어느덧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둘에게 이만 갈 시간이라 했고, 우리 셋은 그렇게 교회를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예배실에서 본 무언가도 그렇고, 아까 몇몇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에 이상하리만치 소름이 돋는 것이 굉장히 기분 나빴다.

하지만 어느새 둘은 술이 깨 있는데다 대화도 한껏 고조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야, 근데 불 켜고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지원이는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아 맞다, 그 캠코더. 그거 지금 보면 안되냐?"

광재는 조수석에서 몸을 돌려 지원이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음.. 여기도 어두워. 그냥 나중에 파일 옮겨서 밝기 높여야겠다."

처음엔 둘이서만 대화를 하다 운전만 하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주제를 바꿨다.

"야 근데 의림이 넌 지금 물류업 하고 있다고?"

"어, 그렇지. 그래서 의림이가 운전을 잘하나?"

저들끼리 좋다고 떠드는 사이 나도 대화에 참여했고, 올 때와는 달리 지루하지 않았다.

"지원이는 모레쯤 다시 서울 간다고 하고, 나도 아마 곧 전국을 다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 오늘 헤어지면 우리 셋 당분간 못 만나겠다."

광재가 한탄하듯 말했다.

"그럼~ 우리 지금 말하는거 찍어놨다가 다음에 만날 때 같이 보자~"

지원이는 그러면서 캠코더 녹화를 시작했다.

"야, 니 사진작가라면서 캠코더만 그렇게 만져대면 안 되는거 아니냐? 우리 사진이나 좀 찍어줘."

내가 비아냥거리자 지원이는 별걱정을 다 한다며 대학 졸업만 하면 프로 사진작가로 책도 몇 권이나 낼 거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올 때에 45분이 걸렸으니 30분 지난 지금쯤이면 도시가 보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야, 네비 켜야겠다. 길을 잘못 든 거 같애."

"아~ 뭐야~ 이런 식으로 재고관리 잘 못하면 납품 못 합니다?"

광재가 놀리면서 네비게이션 전원을 눌렀고, 지원이도 무슨 말을 하려다 하려던 말을 말고,

"야, 잠깐만, 속도 좀 줄여봐."

하고 말했다.

영문을 모른 채 70~80km를 밟다 30km까지 속도를 낮췄을 때, 그제야 지원이는

"저거 사람 아니야?"

하고 말했다.

캠코더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니 거기엔 과연, 흰 셔츠에 긴 청바지를 입고 회색 배낭을 맨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차를 여자 옆에 대고, 오른 창을 열었다. 광재가 고개를 내밀어

"저기요, 어디 가세요?"

하고 말을 걸었다.

한 스물 쯤 되 보이던 여자는 어, 음, 하며 조금 더듬더니

"시내까지 가요."

"걸어가려면 힘들텐데.. 게다가 이 밤중에. 타실래요?"

내가 만류하려는 찰나에, 광재의 말은 이미 입안을 떠나 있었고, 여자는 살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그럼 신세좀 질게요."

하며 뒤에 탔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는 나 혼자뿐인지, 지원이마저 조수석 뒷자리에서 운전석 뒷자리로 몸을 비키며,

"와~ 이런 데서도 사람을 다 만나네요~ 반가워요~"

하며 들떠있었다.


뒷좌석에 탄 여자는 자기가 전남대학교 학생인데, 현장실습과제를 하러 할머니 댁에 갔다 막차가 끊겨 어쩔 수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택시 같은 거 부르면 안 되나?"

"전남대면 병일 오빠 알아요?"

"근데 걸어서 가려면 오래 걸렸을 텐데 다행이네요~"

친구놈들은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계속되는 질문공세에 여자는 많이 난처한 듯했다.

"어, 음.. 헤헤."

그저 웃음으로 일관하며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여자는,

둘의 말이 조금 느려지자 그제야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음, 저는, 백화라고 해요. 최 백화."

"아 그래? 백화라고? 요즘 이름들은 다 흔한데 뭔가 아련한 이름이네."

광재가 앞을 직시한 채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캠코더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차 안을 찍던 지원이가 입을 열었다.

"음, 근데 아까부터 잘 안 찍히네."

백미러로 보이는 지원이의 미간에 약간 주름이 지나 싶더니,

"백화 씨 타고나서부터 그런 것 같은데."

했다.

백화는 지원이가 그런 말을 하건 말건 시종일관 웃는 표정으로 대했고,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예배실에서 발바닥부터 팔뚝까지 올라오던 바로 그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야, 지금 우리 10시에 출발했는데 40분 넘어가. 네비 가라는 대로 잘 가고 있어?"

광재가 말을 마치자마자, 네비게이션이 툭 하고 꺼졌다.

"이거 왜 이래, 자꾸? 안그래도 의림이 아까부터 길 틀리는 길치 다 됬는데."

광재는 농담을 던졌지만 웃는 이는 백화뿐이었다.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는 채로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점점 길을 헤매는 듯한 기분에 차를 세웠다.

애초에 촌에 난 신작로다. 도로도 하나인데 길을 잃는다니, 게다가 올 때는 한번에, 한 시간 거리를 45분에 달려 놓고 이 길을 헤맨다니 말이 안 되었다.

"음, 좀 쪽팔려도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 그럼."

내 표정이 진지했던 탓인지, 아니면 광재와 지원이도 내가 느낀 그것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선 신고를 하기로 했다.

바로 옆에는 전봇대가 있었으므로, 112에 전화하자마자 전봇대 번호를 알려주고 상황을 말하려는데,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55번 도ㄹ^%@^#&%%$#....."

하며 핸드폰마저 불통이 되었다.

'기묘하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그때, 백화가

"제가 길을 알아요."

하고 정적을 깼다.

"저야 뭐 어렸을 때부터 놀러 다녔으니까 길을 잃을 일은 없죠."


백화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는데, 기가 막힐 일은,

그 말이 참 설득력 있고 믿음직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광재와 지원이가 서로 쳐다보고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는, 얼마 있다

"그럼.. 안내좀 해 줄래?"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땐, 뭔가에 홀린 듯 다시 시동을 걸었고, 백화가 가자는 길로 가다 보니, 정말로, 저 멀리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뭔가 너무 멀리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알아차렸다.

멀리 보이는 것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가기 때문에 멀리 보이고, 불빛도 보이는 것이란 것을.

순간 발바닥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것이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역으로 들이쳤고,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차를 급히 세워, 문을 열고 그대로 땅에 엎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급정거해서 모두 몸이 앞으로 기울었는데, 백화만은 정면을 주시한 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갑작스레 무기력해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살폈는데, 또 한 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몇 미터만 더 갔더라면, 그 앞에는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였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산 아래를 미끄러지듯, 넘어져도 구르듯 내려왔고, 아까 신고하는 그 전봇대까지 미친 듯이, 사력을 다해 달렸다.

가지에 스치고 돌에 걸려 넘어지며 몸과 얼굴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났는데, 그런 것쯤은 신경도 안 쓰고 쭉 달려왔을 때, 전봇대에 마침 순찰차와 순경 두 명이 막 도착했다.

"사.. 살려줘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경찰관 둘 앞에서 기절했다.













 -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고, 옆에는 지원이와 광재도 누워 있었다.

나중에 경찰의 말을 들어보니, 피투성이가 되며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나를 순경이 발견하고 놀라서

무슨 큰일이 있겠다 싶어 사람을 풀어 산을 뒤졌다는 것이다.

지원이와 광재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원 안이라 했고, 백화를 차에 태운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백화라는 이름조차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웬 여자를 태웠지 않느냐, 하고 말이다.

나는 백화를 의식해 경찰에게 혹시 우리 말고 다른 이는 없었습니까 했지만 산을 꼬박 뒤져서 나온 건 우리 셋뿐이라고 했다.

서로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싱숭생숭한 마음이었지만 우리 각자의 일이 바빴으므로, 게다가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누워있던 덕에 더 바빠졌으므로, 우리는 거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일 없는 생활이 계속됐다.











 -

그리고 한참 뒤, 친구 형수의 결혼식에 초대된 우리는 몇 달 만에 다시 모일 수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셋은 따로 모여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어느 한 포차에서, 또 어떻게 사느냐는 이야기나 하다, 지원이가 캠코더를 꺼냈다.

"나 이거 너네랑 다시 보려고 가져왔다? ㅋㅋ"

캠코더를 보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야, 그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걸.."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아는지 지원이도 아차 하며 다시 집어넣으려는데, 광재가

"지금 보면 그래도 추억이잖아, 같이 보자~"

하며 억지로 재생시키는 것이다.

캠코더에 저장된 파일은 아주 많았는데, 그 날 저장된 파일은 총 세 개였다.

"우선 첫 번째 거!"

첫 번째 파일을 누르자 지원이와 광재가 사진전 관람을 즐기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둘이서 핀홀이니 피사계 심도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지루한 얘기가 10분쯤 계속되었다.

조금 떨어져서 걷는 내가 잠깐 비췄는데, 나는 봤다.

내 옆에 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당연히 둘도 봤을 것이다. 표정이 일순간에 일그러지는 것이 분명 그것이 무엇이리라 짐작했겠지.

그래서인지 지원이는 일부러 큰 리액션을 취하며

"아, 다음 꺼 보자. 이거 의림이는 재미없겠다."

하고 다음 파일을 눌렀다.

다음 파일은 약 4분간의 영상이었는데, 1분간은 거리를 달리며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1분쯤 되었을 때, 백화가 차에 탔다.

둘은 기억을 못 하는 그 부분이 나오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영상을 보며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백화는 말을 별로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백화는 자기 얘기를 많이 늘어놓았던 것이다.

자기 이름이 백화이며, 전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이다, 할머니 댁은 제주도 화순인데 이쪽 화순으로 잘못 알고 왔노라, 하고.

대부분 문법이 제대로 맞지 않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런 말투였다.

예를 들면, 자기가 60번대 학번이라 선배들이 적어서 아쉽다는 둥, 자기는 사실 62년에 죽었다는 둥.

이 도로를 낼 때 제 무덤이 같이 밀렸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원이의 캠코더는 우리 셋을 찍을 때에는 선명하게 잘 찍히다가, 백화를 찍으려고만 하면 백화의 얼굴이 지직거리며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음, 근데 아까부터 잘 안 찍히네."

지원이가 뱉은 말이었다. 나도 들은 말이다.

백화는

"차 안이라 그런게 아닐까요?"

하고 대답했고, 전혀 논리 없는 말이었지만 우리 셋은

"아,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나는 너무 소름이 돋았다. 두 번이나 끄려고 시도하는 지원이를 제지했다.

나는 그 영상을 끝까지 봐야만 했다.

마지막까지 본 영상에는, 계속 홀린 듯한 우리만 찍혀 있었고, 백화의 얼굴 역시 너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차를 세우고 박차고 나가는 모습이 찍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났다.


우리는 모두 말이 없었다.



세 번째 영상을 마저 재생했다.

세 번째라면 원래는 없어야 할 영상이었다. 지원이가 녹화 버튼을 누른건 두 번뿐이니까.

세 번째 영상은 4초의 짧은 영상이었다.

온통 검은 화면만 나왔다.

한참을 지직거리더니 끝에서는 선명한 목소리가 녹음되었다.





























"아깝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웃지만, 웃음 뒤에는 껄끄러움과 그때의 공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일 후에는 일부러 그쪽으로는 약속장소를 잡지 않는다. 심지어 말도 꺼내지 않는다. 우리 간의 암묵적인 규칙인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 홀렸는지, 그 교회였는지, 도로였는지, 아니면 지금도 홀려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의 경험은 정말 새롭고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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