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썰

[공포 썰] 함부로 강령술 하지마라. ssul

오링어 2021. 12. 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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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술이라고 들어봤냐?


말 그대로 강제로 죽은 영혼을 불러오는 놀이? 의식으로 보는거 더 정확하겠지.



1년 전쯤이었는데 친구 하나가 가족들이랑 미국에 놀러 갔다 왔다면서 자랑을 했다.
어디가서 뭐 먹었냐, 사진은 찍었냐, 소소한 이야기 주고 받던 도중에 임마가 갑자기 가방 안에 손집어 넣고는 부스럭 거리더라.


뭔가 싶어서 보는데 쾌쾌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딱 보기에도 냄새 존나 날 것 같은 오래 된 상자였는데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으면서 설명을 늘어놨다.


부모님이랑 같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왠 잡상인한테 인형 하나를 샀는데, 이 인형이 옛날에 어떤 부족에서 의식같은거 치를때 쓰는 인형이라고, 마을에 위기가 닥치거나 했을때 돌아가신 선조들한테 지혜를 얻으려고 만든 인형이라 하는데 딱봐도 잡상인 약 파는거에 낚인게 한눈에 보였지.


"됐어 븅신아."
"아 함 해보자니까. 쫄았냐."


졸라 수준 낮은 도발에 응해줄 생각없어서 걍 하고 싶으면 니혼자 하라고 하고 같이 피방에 갔는데 다른 친구들까지 만났다.

오랜만에 우연찮게 모이니까 괜스레 분위기 타서 해질때까지 게임 하다가 슬슬 배가 고파져서 집에가려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저녁 뭐냐고 물었더니 엄마랑 아빠랑 친구분들 만났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오랫동안 알고지내신 친구분 두분 계시는데 간간히 모이곤 하셨거든.

별수있나. 그냥 편의점 도시락 사서 대충 떼울라 하는데 친구가 뭐 먹냐고 물어보길래 오늘 부모님
어디가셨다고 했더니 갑자기 벌떼 마냥 모여들어서 우리집 가자고 선동을 했다.

괜히 집 어질러 놨다가 나중에 엄마오면 등짝 한대 쳐맞을거 같아서 됐다고 했는데,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리집으로 2차가 잡혔다.


대신에 잠자리 내가 제공하니까 먹을건 니들이 알아서 챙겨 오라하고 우리집으로 가서 영화 보면서
술 마시는데 친구 한 명이 구석에 박혀있던 상자 보더니 이게 뭐냐고 묻더라.


선물 사온 친구가 A라고 하면 나머지 세명해서 총 다섯명이었는데 B가 A한테 물으니까 이새끼가 신나가지고
막 설명하는데 술 기운에 취한건지 얼핏 들어봐도 개소린데 다들 신나가지고 한번 해보자고 다시 또 선동하기 시작했다.


집 어지르면 괜히 나만 욕 먹는다고 니들 집에 가져가서 하라니까 다같이 정신연령이 낮아진건지 A처럼 도발하면서 하자고 아우성거렸다.


하도 딱 잘라서 싫다하니까 안되겠다 싶었는지 만약 귀신 안 나오면 만원 준다고 딜 시전.

당연히 나올리야 없는거 지도 알테지만 진짜 하고 싶나? 그렇게까지 하니까 안쓰럽기도 하고 걍 돈 먹는
다고 생각하고 콜 했다.


의식 준비를 하는데 A가 왠 부적?을 가져오더니 우리한테 나눠줬다.


"뭐야 이게?"
"그림인가? 글자인가?"
"이게 있어야된데, 안그러면 우리한테 빙의 될 수도 있데."
"별 지랄을 다하네 진짜."


말은 그렇게 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하려니까 긴장되더라.

스릴 넘치기도 하고, 솔직히 조금 쫄기도 했다.



집에 창문 다닫고, 불 다 끄고 주위에 촛불만 켜놓고 의식 시작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저희가 질문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꼴에 규칙 지킨다고 A가 나름 존중하는 말투로 대사를 쳤었다.

어쨋거나 우리는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귀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는거지.




"……."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없었고.




"저희와 이야기를 나누실수 있는 분 안계시나요?"



마찬가지로 묵묵부답이었는데 C가 A한테 그러더라.


"근데 이거 한국말로 해도 되는거야? 무슨 부족이 만든거라며. 걔네 말로 해야되는거 아냐?"
"여기는 한국이잖아. 여기사는 귀신 부르려면 한국말로 해야지."


근데 좀처럼 올 기미가 안보이더라.




"아무도 없나요?"


한 20분 가까이 그짓하다가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다들 때려치기로 했다.

촛불 끄면서 이럴줄 알았다고, 븅신새끼 잡상인한테 속았다면서 욕하는데 궁금한거 많은 C가 또 A한테
물어봤다.



"근데 귀신 기분 상하게 하면 안된다면서 마음대로 끝내도 되는거냐 이거?"
"귀신이 안왔잖아 씨발."


지가 하자고 해놓고 만원 꼴아박으니까 괜스레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한테 신경질 내더라.



아무튼 그렇게 쫑났지.



그러고 다같이 자다가 일어나서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일어났다가 너무 졸려서 아침 스킵하고 3시쯤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와있더라.

늦은 아침겸 점심 먹고 게임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거 어딨지?"



인형.


솔직히 그런거 집 안에 쳐박아두면 기분 찝찝하잖아.
버리려고 했는데 이게 안보이더라.



"엄마 혹시 인형 못봤어?"
"무슨 인형?"
"그 뭐라 해야되지? 이상하게 생긴건데."
"못봤는데."


어제 A가 가져갔나 싶어서 전화 해봤더니 금마도 모른다더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여기서 조금 겁나긴 했는데 아무래도 설마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래도 계속 찝찝해서 괜히 이리저리 몸 비트는데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었다.
꺼내보니까 어제 받은 부적이 있더라.


이거는 버리지말고 가지고 있으려고 책상 서랍에 넣어뒀었다.



그리고 할게 없어서 다시 겜 하는데 집중하다 보니까 금세 잊어버렸다.





자정 다 되가도록 게임하니까 한소리 하길래 이제 끄고 자려고 씻고 방에 왔는데, 그 느낌 아냐?
익숙한데 낯선 감각?

내가 알던 공간인데 뭔가 미묘한 이질감.


이게 아무렇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일련의 사건이 있다보니까 갑자기 하나 둘씩 떠오르면서 지나칠정도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거야.


서랍에 넣어뒀던 부적 꺼내서 베개 밑에 넣어두는데 주머니에서 뒹굴어서 그런지 처음 받았을때보다
약간 꾀죄죄 했다.


자려고 눈을 감아도 하도 잠이 안와서 C한테 전화를 했다.




"왜."
"너 부적 가지고 있냐?"
"뭔 부적?"
"A가 준거."
"A? 아 그 뭐냐. 그거할때 받은거? 있을껄?" 왜?"


무섭다고 하기 쪽팔려서 아무것도 아니라 하니까 딱 눈치채고 놀리더라.
걍 끊어 새끼야 하고 어거지로 눈 감고 자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고 한시간쯤 지났을려나?



나는 어지간해선 꿈을 잘 꾸지않는다.
1년에 꾸는 횟수도 5번 안팎일 정도로.

대신에 잠에 드는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올리는데 이 시간동안 눈을 감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청각이 발달한다 해야되나?


평소보다 곤두서게 되는데 이 날, 원인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는 방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거 때문이 기분이 이렇게 좆같은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선가 계속해서 쳐다보는 느낌이 진짜
너무 좆같은데 차마 눈을 뜰수가 없었다.


어둠에 익숙해져서 어느정도 시야는 보이긴 하지만 눈 뜨면 뭔가 내 앞에 있을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사람 호기심이란게 정말 강하더라.


무서우면서도 계속 궁금한거야.

아무것도 없는거 확인하면 그만이니까.


뜰까말가 잠깐의 시간동안에 미친듯이 고민하다가 뜨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눈을 뜨려던 순간에
'달그락' 하는 소리에 '씨발' 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석에 몰린 생쥐처럼 바짝 달라붙어서 소리난 곳을 쳐다보니까 책상에서 볼펜이 떨어졌더라.


씨발 갑자기 저게 왜 떨어져 하면서 한숨 쉬는데 등 뒤로 식은 땀이 줄줄 났다.

나중에 A 만나면 한소리 하려고 생각하면서 그날은 몰래 부모님 방으로 가서 잤다.




다음 날에 A 만나서 어젯밤에 있던 일 말해주는데 이새끼가 놀릴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듣더라?

들어보니까 가위에 눌렸다는거야.


꿈에서 자다가 일어났는데 거실에 티비가 켜져 있길래 끄려고 하니까 갑자기 티비 화면이 지지직 거리는
화면으로 바뀌면서 괴성이 들려서 놀랐는데 다시 침대에서 일어난거지.

꿈 속의 꿈.

식은 땀 닦아내면서 방 안에 불부터 켜려는데 갑자기 귓속말로 누군가 그랬다더라.



"니가 나 불렀잖아."



그러면서 놀라서 옆에 쳐다보려는 순간에 다시 한번 또 꿈에서 깼다고한다.


듣는데 씨발 소름이 안 끼칠수가 있냐.

내가 혹시 몰라서 너 부적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가지고 있다더라.
다른 애들도 부적 버렸을까봐 그때 있던 애들한테 다 물어봤다.

나쁜 소식 한가지랑 그나마 다행인 소식 하나.


다들 똑같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거랑. 부적 가지고 있다는거.


처음엔 서로 별거 아니라 생각 했었는데 다들 비슷한 일이 있었다니까 낌새를 차린거지.


아 우리가 뭔가 건드리면 안되는걸 건드렸구나.
진짜로 좆 됐구나.




"나는 그때 니네 집에서 일어나서 인형이랑 상자 가져가려고 했는데, 인형 없길래 니가 어디 치운줄 알았지.
가져 가기도 솔직히 좀 그래서 걍 그런가보다 하고 상자만 내가 버리려고 가져 왔어."

"아니 그럼 씨발 이게 어디가냐고."

"나도 모르지."



갈수록 태산.

집에가서 엄마한테 한번 더 물어보니까 자꾸 무슨 인형을 말하는거냐고 화내길래 알았다고 했다.




제일 불안한건 점점 밤이 다가온다는 거였다.


어쨋거나 잠은 자야 되니까.
어거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근데 이날은 이상하게 전날 느꼈던 그 느낌이 없었다.

그냥 조용한 평소의 내 방.



단순히 그저 자기 최면 때문에 그렇게 느낀건가 해서 어느정도 안심은 했지만 완전하게 긴장을
풀 수가 없어서 부적 꼭 쥐고 자리에 누웠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던가?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나고 아무 느낌도 안나니까 슬슬 잠이오기 시작하는데 왜 가끔 그러잖아.
윗 집인지 아랫 집인지 남의 집 문여는 소리.


이 늦은 시간에도 일을 하고 돌아오는건지 그런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낯설지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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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야 다 똑같지만 그 특유의 규칙이랑 자릿수가 몇 년동안 내 몸에 베여있는 그 소리와 너무 흡사했다.


그리고 몇 초 뒤에 살랑살랑 소리가 들려오더라.



우리 집 현관쪽에 풍경이 하나 달려있거든.


아주 살짝 스치듯이.



'띠링'



하고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 뜨였다.



'씨발'



온갖 육두문자가 머릿속으로 재생되는데 아랑곳않고 현관 지나서 아주 짧은 복도.

그 사이를 뭔지 모를 인기척이 유유히 지나서 딱 내 방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달그락'





이번엔 볼펜이 아니고 문고리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니까 엄마가 놀라서 내 방으로 뛰어오셨다.





"뭐야? 무슨 일인데? 너 괜찮아?"

걱정하시면서 물으시는데 말은 못하고 식은 땀만 줄줄 흘렀다.



"악몽꿨니?"
고개 끄덕이니까 밤새 게임만 해서 그런거라며 구박하고는 물 떠줄테니까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밖으로 나가시는데 그 순간 다시 풍경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살짝 스치는 소리가 아니가 거칠게 치는 소리.


차마 바람이 흔드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이 그렇게 세게 칠수가 없었다.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서 안방에서 잔다고 억지 부리고 잤다.


그러고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이 친구들한테 전화가 왔다.




이거 씨발 아닌거 같다고.

그때 그냥 끝냈으면 안됐다면서.



일단 서로 무슨 일 있었는지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이 비슷했다.



"뭐가 꼬이긴 꼬였네. 씨발.."
"근데 이거 끝내는 방법은 뭔데? 알기는 하는거야?"
"그런건 못들었어. 그냥 설명만."
"아이 븅신이 진짜."

상황이 급박해지니까 괜히 서로만 책망했다.

일단 부모님한테 말하는게 어떻냐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


혼자 말하면 게임 중독으로 오인받을까봐 다같이 모여서 우리 부모님한테 갔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눈 찡그리시면서 안 믿으시다가 우리가 사뭇 진지하게
말하니까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하더라.


아무래도 이런쪽으로는 나이드신 분들이 더 빠삭하신 편이니까.


다섯명이 초라하게 뭉쳐서 우리 진짜 어떻게 되는거 아니냐고 재수없는 농담하는데, 부적 얘기가 나왔다.


"나는 베개 밑에 넣어뒀는데."
"나는 책상 서랍."


말 나온김에 부적 가져오려고 방에가서 베개 밑에 손을 넣었다.

바스락 거리는거 집어서 별다른 생각없이 가져가다가 문득 깨달았다.



"뭐야 이거.."



부적이 검게 그을려져 있더라.



완전히 검게 된건 아닌데 누가봐도 처음이랑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친구들한테 가서 니들꺼도 이렇게 돼있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확인 안해봤는지 아리송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분위기가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야 이거 빙의 되는거 막아주는거라며.."

C가 말했다.

"그럼 이거 이러다가 다 타면 어떻게 되는건데.."
"아 재수없는 소리 좀 하지말라니까."


부적이랑 같이 속도 타들어갔다.


그때 엄마가 오더니 우리들보고 조만간 연락할테니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밤에 부모님이랑 함께 있으라고
하셨다.

자초지종 잘 설명드리고 혹시라도 안 믿으시면 도와드릴테니 자신한테 연락하라고.

일단 뭔가에 쓰인게 맞으면 함부로 행동하면 안된다고.



그날 안방에서 자는데 내 편이 생기니까 굉장히 든든했다.

정말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커다란 걸 간만에 느끼는 날이었다.


사흘만에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다 생각하니 긴장이 풀려서 슬슬 잠이오는데, 한 3시쯤 됐나.







'쩌억- 쩌억-'




습기진 장판 위를 맨발로 걸어다는 소리 알지?

그 소리처럼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라.
오늘은 풍경 소리도 안들렸는데 내가 자는 사이에 울렸던건지.

그럼 계속 잠이나 쳐자면 될 것을 왜 뇌는 쓸데없이 이 타이밍에 깬건지. 스스로를 계속 원망했다.



발바닥 소리는 느리지만 규칙적인 소리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내 방에서 가져왔던 부적 손에 꼭 쥐고 부들부들 떨면서 부모님 깨우려고 엄마를 흔드는데 그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안방 앞에서 뚝 멈추더라.







안들어오나?






조용한 긴장감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감돌았다.






그때 정적을 깨고 문고리가 움직일때쯤에 "온다!! 아아악!" 하고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엄마랑 아빠가
벌떡 일어나서 방안에 불을 켰다.


아빠가 화난 것처럼 문을 확 열었지만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한순간에 방안으로 바람이 확 들어오는데 무슨 태풍이라도 부는 줄 알았다.
안들렸던 풍경소리가 안방까지 들렸는데 엄마랑 아빠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보셨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내일 바로 가야 될 것 같다고, 시간 지날수록 안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옆에서 듣는
당사자인 나는 벌벌 떨면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에 각자 집에 연락 때리니까 다들 초췌해져 있더라.


시간으로는 며칠 안되었지만 체감상으로는 4일이 아니라 4년은 된 것 같았다.



가는동안에 차 안에서 다들 죄수처럼 고개 푹 숙이고 이동하는데 왠 산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더라.



다른 부모님들도 다들 바쁘신 와중에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엄마가 용한 스님을 알고있으니 걱정 말라며 위로를 하셨었는데, 평소에 종교니 뭐니 욕하던 나도 상황이
급박해지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외할머니가 집 안에 큰 행사가 있거나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깊은 산중도 매일 들락거리실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셨는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가봐야 아는 거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보다야 나으니까.





두시간 넘게 달리고서야 도착한 절에서는 불경 소리가 들렸다.



나이 지긋해 보이시는 스님께서 나오시더니 외할머니 성함 말씀하시면서 맞으시냐고 물어보셨다.

엄마가 어떻게 된 일인지 간략하게 설명하니까 우리보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절 안에 들어가서 정확히 이러이러 해서 일이 이지경까지 됐다고 설명을 했다.
스님은 존댓말 쓰시면서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거의 다 타들어간 부적 보여주면서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변하고 있다.
제발 저희 좀 살려달라.


거의 울며불며 애원하다 싶이 말하니까 스님이 눈을 찌푸리셨다.



"일이 끝났으면 마무리를 지어야지 왜 그대로 내팽개쳐 뒀습니까?"
"인형을 잃어버렸어요."
"떠났으면 일이 이렇게 안됐겠지요."
"네?"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하니까 스님이 부적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계속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니까 이게 이렇게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 며칠 앓으면서 알게됐듯이 귀신이 우리 근처에서 계속 작업치고 있다는 뜻이지.

근데 인형이 없잖아.
다들 모른다는데 이걸 어디서 찾아.



그러다가 문득 A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야 너 가위 눌렸다고 한거.."
"나?"
"생각해보니까. 그때 가위눌린거 너밖에 없지 않았냐?"

그때 다들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 가위 눌렸다고 한건 A 밖에 없었거든.


"니 집에 전화해봐."
"여기 전화 터지나?"


서둘러서 A 집에 전화를 걸었다.

A 어머니께서 찾아본다고 하시곤 전화 연결해놓으신 상태로 계속 찾아봤지만 안보인다고 하셨다.

그때 C가 그러더라.


"너 상자 안버렸다고 했지?"


다들 뒤통수 한대 후려맞은 것처럼 아- 하고 탄식을 했다.











"어머? 여기있네?"


A 어머니가 그 말 하시는데, A 표정을 차마 잊을수가 없었다.
오만상이 얼굴에 담겨있는데 다들 무슨 느낌인지 서로 알았겠지.



"그게 왜 거기있지.."


나중에 A가 나지막이 말하는건 나만 들은 것 같았다.




그 먼거리를 A 아버지가 차를 타고 오셔서 가져다 주셨는데 상자 열어서 인형 들어있는거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모습은 똑같은데 인형 눈깔이 꼭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쳐서 눈을 못쳐다봤다.




"보니까 빨리 떼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체해서 좋을게 없어보여요."
"감사합니다 스님."


우리는 오늘 하루 절에 머물기로 하고, 우리 부모님은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내일 여기로 다시 오신다고
하시고 A네 아버지는 잘 부탁드린다고 하시면서 다시 돌아가셨다.



절 구석에 작은 방 하나가 있었는데 벽면이 원룸정도 되보이는 작은 공간에 벽면이 다 누리끼리 해져있었다.


향 냄새인지 모를 냄새도 스믈스믈 올라오는데 한쪽 면에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더라.


아무튼 그 그림 앞에 작은 상 놓고 위에 인형을 올려놨다.
양 옆에 초를 피우고 방 구석에도 초를 하나씩 피워놨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부적을 가져가시더니
찢어서 접시에 담은 후, 구석 초에 하나씩 놓아두셨다.

남은 부적 하나는 혹시 모르니 지니고 있으라고 하시고, 우리더러 당연한거겠지만 동 틀때까지 어디
싸돌아다닐 생각말고 혹여라도 용변이 마려우면 요강 있으니까 요강에 싸라고 하셨다.



다 큰 사내새끼 다섯이서 작은 방안에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으니까 우습기 그지 없을텐데도
다들 웃을 상황이 못 됐다.


시간은 이제 막 해가 져가는데, 갈 기미는 안보이고..


어느정도 긴장이 풀릴때쯤에 A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아무거나 막 안 산다고.
그러니까 우리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맞아 병신아. 이게 다 니 때문이지."
"니는 그래도 만원 먹었잖아 씹새야."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니까 함께 있는게 실감되고, 피해자 다섯명이 아니라 천군만마 얻은 기분처럼
자신감이 생기더라.


"내일 피방이나 가자."
"이 상황에 게임이 하고 싶냐."
"뒤지진 않을거 아냐."


서로 화기애애 할때에 C가 뭔가 눈치챘는지 문 밖을 살짝 쳐다봤다.


"왜?"
"불경소리 멈췄어."
"어? 그러네?"


우리가 떠드는 사이에 어느순간 불경소리가 멈췄더라.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일순간 얼음이 됐다.




몇 시일까?

지금부터 시작인건가?

집에 있을때는 자정쯤은 되야지 뭔가가 일어 났었는데 지금이 벌써 자정인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이 빨리 끝났으면.

그 생각만 간절하게 하고 있었다.





다들 말 없기를 수십 분.



의외로 아무일도 안 일어난다고 생각 할 무렵에 저 멀리서부터 마룻바닥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오는 길에 방이 하나씩 있었거든?



근데 씨발 머릿속에서 그린 그림대로 천천히 마룻바닥 밟으면서 걸어오더니 중간중간 문을 하나씩 열었다.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절 안을 울리는데 내 맞은 편에 있던 D가 입모양으로
'아.. 씨발 진짜'
하면서 탄식 했었다.


방이 세개 있었는데 하나 지나서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그리고…






























"여기 있었네?"























식겁했다.




남자 목소린지, 여자 목소린지 분간이 안가는 목소리로 문 너머에서 말하는데 와 진짜 미치겠더라.

하나 남은 부적 가운데에 두고 마음속으로 제발 살려주세요 부처님 죄송합니다. 제가 다 죄송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미친듯이 빌었다.







"여기 있었네? 여기에 있었네?"

같은 말을 하는데 무슨 테이프를 감았다 풀었다 하듯이 엇박자로 말하는데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너희가 나 불렀잖아. 응? 여기 있었네. 너희들이 나 불렀잖아!"


그러면서 어거지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하도 낡아서 뜯어져 나갈 것 같았는데 꿋꿋하게 버텨줬다.
그래도 어떻게든 열어볼려고 정신병자처럼 흔드는데 목소리가 점점 더 빨리지면서 커졌다.



"왜 안열어? 응? 왜 안열어? 좀 열어봐. 너희들이 나 불렀잖아. 왜 안열어?"
















"문 열라고!"





우리가 계속 쥐 죽은 듯이 있으니까 격해지다 못해 이젠 발이라고 생각되는 걸로 문을 차버렸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찼다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거다.


시간이 가긴 하는건지. 작게 피워놓은 촛불이 점점 더 타들어가는데 해가 뜰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친구 둘은 이미 울고있고 나머지도 사실상 울상이었는데 한참을 문을 잡고 실랑이를 하더니
점점 조용해질 무렵이었다.












"이제 다 끝났다."







스님 목소리가 들리더라.





목소리를 들으니까 자연스레 다리가 풀려버렸다.



문을 열어야 되는데 나는 이미 다리가 풀려서 비교적 멀쩡한 A가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C가 정색을 하는거야.




"야 씨발 잠깐만 있어봐."
"왜 또."


얘가 말할때면 항상 불안하더라.

날카롭긴 하지만 대부분이 불길한 예감이었으니까.







"왜 그러냐."



문 밖에서 스님이 한번 더 말을 거시는데 이때 나도 C가 왜 이러는지 알았다.







"스님 원래 반말하셨었냐?"
"반말 할수도 있지. 시발 니가 꼰대냐?"
"애초에 동 틀때까지 나오지 말랬잖아."
"뜬거아니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해가 떠 이 병신아."



논리적으로 말하니까 A도 쫄았는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다들 뭉쳐서 문 쳐다보고 있는데 스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길래 D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님?…"













이제 굳이 말 안해도 다들 문 밖에 있는게 스님이 아닌건 알았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될지가 문제였지.




왜 시키는대로 했는데 아직도 안끝났는지, 이젠 누굴 원망해야 되는지.

머리 쳐박고 한숨 쉬려는데 갑자기 아까처럼 문이 크게 덜컹거리더니 방 안으로 바람이 화악 불었다.



순간 너무 세게 불어서 촛불들이 전부 꺼질 뻔했다.




전부 화들짝 놀랐다.
밀폐 된 방 안에 소름끼치도록 서늘하게 바람이 불었으니까.





"야 씨발 이거 어디갔어?"


그때 한 명이 방바닥을 더듬거리면서 물어봤다.




"뭐가?"
"부적이 안보여."


듣고보니까 우리들 사이에 놔뒀던 부적이 없어졌다.

아까 바람에 방 안 어딘가로 날아간건지, 원래 있던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부적 찾으려고 서로 근처 방 바닥을 더듬거리는데 이때부터 갑자기 문이 진짜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까랑은 비교도 안될정도로 흔들리는데 이건 거의 문을 흔드는게 아니라 우리가 있는 방 전체를 흔드는게
맞다고 할 정도로 쿵쾅대는데 부적이고 나발이고 다들 소리지르면서 부처님 그림에 절하면서 살려달라고
미친놈들처럼 울부짖었다.







"살려주세요! 이제 이런거 안할게요! 살려주세요!"


너 나 할거없이 목이 쉴 정도로 울고불고 애원하는데 문이 여전히 흔들리는 와중에 또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이번엔 초가 꺼져버렸다.





한순간에 방안이 어두컴컴해 지면서 우리도 약속한 것처럼 일순간 조용해졌다.






컴컴하다.








뭐지? 좆 된건가?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데 모르는새에 문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야.. 해 뜬거 아니야?"




얼마나 엎드려 있었는지 몸에 쥐가 날 것 같았는데 문 틈 새로 푸른 빛이 보였다.








"나가야되나?"



어떻게 해야될지 확신이 안서서 다들 쉽사리 못나서고 계속 안에 있다가 스님이 직접 문을 열고 나서야
진짜 끝났다는 걸 실감 할 수 있었다.


방 구석에 놓아뒀던 찢은 부적들은 거의 완전히 새까맣게 돼버렸었다.



조금 이따가 부모님이 오셨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엄마도 고생했다면서 안아주시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계속 울었다.



다섯명이서 스님한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인형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까 태우긴 할건데 바로
태우진 않고, 우리들 떠난 후에 절에서 제사를 지내준 후에 태운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긴장이 풀리니까 무슨 무용담이라도 늘어놓듯이 친구들끼리 허세를 부리는데
어처구니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도 끼어들어서 A한테 이제 이딴 빌어먹을거 사오지 말라고 욕 하고, 한숨 쉬면서 편히 앉는데 주머니에
뭐가 있더라.



뭐지 싶어서 꺼내니까 마찬가지로 이제 처음보는 사람이 보면 뭔지도 모를만큼 까맣게 되버린 네모난 종이가 나왔다.



다같이 웃고 떠들던 녀석들도 잠깐동안 조용해 졌었는데 이제 끝난거 걍 버려 버리라고 C가 그러길래
가는 길에 버렸다.





다행히 그 뒤로는 친구들이랑 나 모두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한동안은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부모님 끼고
자야했다.




너희들도 괜히 안해도 됄 고생 치르지 말고, 장난 삼아서라도 위험하다 싶은 강령술은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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