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 중에 낚시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주말마다 낚시하러 쏘다니느라 여자친구한테 차인것도 여러번.
그 정도로 낚시를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낚시도구를 죄다 처분하더니, 그 이후로 낚시는 커녕 물가도 안가는게 아닌가.
낚시도구를 처분할 때 한번 뭔 일 있었냐고 물어봤었지만, 대답을 피하길래 굳이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계속 신경쓰여서 한번 그와 술을 마시고, 어느정도 취했을 때 물어봤다, 그가 운을 띄었다.
"합천군 쪽에 밤에 가면 쏘가리가 잘 낚이는 큰 호수가 있어.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서 주말에 가도 사람이 잘 없거든."
알콜이 그의 입을 풀어놓았는지,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날도 그랬어. 금요일에 오랜만에 정시퇴근해서 퇴근길에 그대로 거기로 가버렸지.
어차피 낚시 채비는 차 트렁크에 있었으니까.
길이 좀 막혀서 도착했을때는 밤 11시쯤 이었어.
출출한 김에 생수를 끓여서 컵라면이랑 소주 반병쯤 마시고, 낚시대를 잡았지."
또 한잔, 그의 손이 소주 잔을 잡는다.
나도 서둘러 소주잔을 들고 한번 잔을 맞부딪히고 그대로 삼킨다.
쓴맛이 올라오자마자, 나는 안주로 시킨 오뎅탕에서 오뎅을 하나 건져먹었다.
반면 그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기본안주인 땅콩을 한 알 집어먹으면서 피식 웃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낚시 좀 하고 차에서 잘거였으니까 음주운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알잖아, 나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거.
아무튼 그래서 낚시줄을 던져야 하는데, 어디다가 던질까 고민이 되는거야.
평소에는 그냥 대충 던지고 낚이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이었는데, 어째 그날따라 쏘가리 매운탕이 생각나서 한마리는 꼭 잡겠다고 벼르고 있었거든.
그래서 나는 하늘을 올려봤어.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었지.
덕분에 불빛 하나 없었지만 새까맣게 어둡지는 않았어.
그거 알아? 쏘가리는 이런 밝은 밤에는 자기 집에서 쥐 죽은듯이 숨어있다? 그럴 때는 강 한가운데에 깊숙히 던지는게 포인트야.
그래서 조금 무거운 추를 달고 좀 멀리 낚시줄을 던졌지.
그 다음부터는 인내심과의 싸움이야.
물고기란 생물이 수달이나 사람에게 하도 잡아먹히다보니 이것들이 상당히 예민하거든.
물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천적이 왔다는걸 눈치채서 경계심이 강해져.
그래서 이놈들이 바늘을 물 때까지 나는 닥치고 찌만 바라보고 있어야하지.
그러다가 30분쯤 지나서 입질이 왔어.
입질을 보니까 딱 쏘가리라고 생각했어."
한번에 긴 말을 해서인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재빨리 그와 내 잔에 소주를 채워 넣은 다음에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소주를 또 한잔 들이킨 후, 말을 이었다.
"기대했던대로 쏘가리 한마리가 잡혔지.
그런데 크기가 좀 작은거야.
물론 나 혼자 매운탕 끓여먹기에는 충분했지만, 그래도 기껏 왔으니 이왕이면 너랑 상철이랑 수민형님이랑 같이 먹고 싶었거든.
그래서 큰놈을 1마리 더 잡던가, 적당한 놈을 2~3마리 더 잡던가 하고 끝내려고 했어.
옘병, 그냥 나만 먹고 말걸 쓸데없는걸 생각해가지고...
아무튼 그래서 다시 그 포인트에다가 낚시줄을 던졌는데..."
그가 말없이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워넣었다.
그가 자작을 하다니, 상당히 별일이었다.
나는 적당히 눈치를 보고 내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우리는 건배를 하고 술잔을 들이켰다.
"던지자 마자 뭔가가 걸린거야. 그런데 그...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의 그, 뭐라해야하지, 아무튼 느낌이 있거든? 푸드득거리는 그런 느낌.
이게 물고기마다 달라.
쏘가리는 조금 약하게 푸드득거리고, 베스같이 힘 좋은 놈은 쎄게 푸드득거리고. 누치라고 커다란 놈도 있는데 그 놈은 아예 푸드득거리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강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려.
아무튼 그렇게 물고기마다 입질 느낌이 다른데, 그 순간 느낀건 그 어느것도 아니었어.
오히려 돌이나 쓰레기같은것에 바늘이 걸린 느낌에 가까웠지.
그런데 그런것 치고는 자꾸 움직였단 말야?
뭐, 그때만 해도 별 생각은 없었어.
그냥 이상한 놈이 걸렸나보다 했었지.
아무튼 걸렸으니 잡아야할것 아냐? 그래서 열심히 낚시줄을 당겼는데 힘이 여간 좋은게 아닌지 꿈쩍도 않더라고.
한 5분쯤 힘싸움을 하다가 그냥 낚시줄을 끊어버릴까 생각하던 타이밍에... 아 젠장, 그 때 끊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놈이 갑자기 힘이 빠졌는지 스무스하게 술술 올라왔어.
나는 신나게 릴을 감았고, 그리고 어느정도 감으니 보름달의 어렴풋한 빛에 비추어진 수면에 무언가가 떠올랐지.
뭐, 너도 이쯤되면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그건 쏘가리가 아니었어.
물고기조차 아니었지.
그건 머리였어."
그가 또 한번 자작을 하고, 딜레이도 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압도되어 그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내 술잔을 채우고 나도 한잔 들이켰다.
그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응. 아마 머리였을거야.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생물 중에 그런 머리를 가진 생물은 없어. 생물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동그란 무언가가 올라오길래 '역시 쓰레기였나'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이왕 온 김에 환경보호나 하자는 생각으로 계속 감으려했는데, 그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낚시를 해서 뭔가를 낚아올리면 땅에 거의 도착하고서야 살짝 보일락말락 하거든? 물에 뜨는게 아닌 이상 다 그래.
그런데 그 동그란 그것은 땅에서 최소한 1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었어.
그걸 깨달은 나는 릴을 감는 손을 멈췄지.
그리고 나는 두번째 사실을 깨달았어.
그것은 내가 낚시대를 잡아당겨서 끌려나온게 아니라,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것이었어.
왜냐면, 내가 릴을 감지 않았는데도 그것은 계속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거든."
그가 또 소주를 스스로 잔에 따르고 한잔 마신다.
한편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을거야. 너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서 내 머리가 잠시동안 파업을 했었겠지.
이윽고 그 동그란 것이 물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어.
타원형이었는데, 거리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어서 정확한 크기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경이 50cm정도는 됐던것 같아.
그리고 이윽고 그 타원의 밑을 지탱하는 약간 얇은 막대가 보였지.
그제서야 나는 그게, 동물의 머리와 목의 형태와 비슷하다는것을 깨달았어.
그리고, 점점 머리의 높이는 높아졌어.
그리고 그 목의 아래에 다른 부위가 드러났지.
거대한 몸통으로 추정되는 부분과, 두개의 팔...
응, 맞아. 그것은 강바닥에서 육지로 걸어서 올라오고 있었던거야. 나를 향해서.
그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낚시대를 내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주차해둔 방향으로 뛰어갔어.
그 자리에서 한 50m거리였는데, 정말 미친듯이 뛰어갔지.
그러다가 넘어져서 신발 한짝이 벗겨졌지만 그딴데 신경쓸 여유가 어딨겠냐. 그낭 짝짝이 발로 뛰어갔지.
그리고 차에 들어가서, 아, 그래, 그 날 내가 참 잘했던 유일한게 바로 차 문을 잠그지 않았던거였어.
어차피 사람도 없어서 그냥 안잠궜거든.
그리고 창문도 열어논 상태였지. 응 아무튼,
콜록콜록..."
그가 기침을 했다.
한번에 너무 말을 많이해서 목이 탄 모양이었다.
서둘러 일어서서 카운터의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냈다.
가는 길에 가게 입구쪽에서 술집 알바가 짜증내면서 대걸레로 바닥의 물기를 닦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밖에 비도 안오는데 왜 이리 바닥이 흥건한걸까? 좀 이상했지만 이내 물청소라도 하나보다하고 생각하며 그냥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물컵에 물을 따라 그에게 건냈다.
"아, 고마워. 그래서, 차에 들어가서 시동을 키고, 엑셀을 밟으려고 했지.
그 때 내 어깨에 뭔가가 닿은 느낌이 들었어.
손으로 보이는게 창문을 통해 내 왼쪽 어깨를 잡고있었어.
내가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다가온 그 괴물이, 살점이 전부 물에 퉁퉁 불은듯한 거대한 얼굴... 씨바, 솔직히 그게 얼굴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거기에 해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괴물이 내 바로 옆에 있었던거야.
미칠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정신줄놓고 엑셀을 최대한 쎄게 밟았지.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인생 최대의 속도로 차가 달려갔는데, 아마 180km는 나왔을거야.
다행히도 그 손은 속도를 버티지 못했는지 떨어졌고, 나는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났어.
한참을 미친듯이 정신줄 놓고 운전하다가, 마이산 근처쯤에서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줄였어.
그 때 도로가 텅 비어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가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들이키고 나서야 그게 빈 잔이라는걸 눈치채고는, 말없이 소주를 술잔에 따랐다.
그는 상당히 취한 모양이었다.
나도 상당히 술을 마셨고, 평소였다면 나도 취했겠지만,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해서인지 묘하게 정신은 말짱한 편이었다.
"그래. 응. 이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내가 낚시 관둔거야. 꿈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하,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때 입은 셔츠의 왼쪽 어깨부분, 응, 그 괴물이 잡은 부분에만 젖은 자국이 나있고, 해초도 몇가닥이 붙어있더라고.
난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었는데. 썅...
아무튼 그 이후로 물가에는 얼씬도 못하겠더라.
귀신잡는 해병대 나와서 이런말하기 쪽팔린데, 솔직히 아직도 무섭다. 나는"
그의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그 후 연달아 술은 5잔 쯤 더 마시더니 그대로 탁자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콜택시를 불러 그를 집으로 보내줬었다.
그리고 반년 후.
그는 죽었다.
사인은 익사였다.
물가에는 얼씬도 안하겠다고 말한 그였지만, 회사 송년회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낙동강에서 송년회를 하고, 그 밤에 그는 실종됐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사원중에서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비도 안왔는데 술자리 근처에서 물웅덩이가 발견된것이 의구심을 키웠지만, 그것은 아무런 증거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그는 낙동강 하류에서 낚시하던 낚시꾼의 낚시바늘에 걸려서 발견되었다.
그의 시체에는 낙동강에 가라앉아 있던걸로 추정되는 낚시줄과 낚시바늘이 잔뜩 얽혀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만취한 상태로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휘말려 익사했다고 발표한 후 수사를 종료했다.
나는 그저 장례식장에서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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