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전투 후 진나라의 백기가 조나라 병사 40만의 포로를 생매장한 사건 전투는 끝났다. 그러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한꺼번에 40만이라는 엄청난 포로를 받게 된 진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많은 포로를 먹일 군량이 진나라에는 없었다. 결국 백기는 끔찍한 선택을 했다. 백기는 조나라 군사들이 조를 나누어 구덩이를 파게 한 후, 그곳에 군사들을 묻어버렸으며, 전투 후에 취한 조나라 군사들의 수급을 모아 영루(營壘)에 쌓게 하였다. 백기는 이 산을 두로산(頭顱山)이라 부르고, 이 산 꼭대기에 지은 누각을 백기대(白起臺)라 불렀다. 훗날 한 시인이 이 참담한 장면을 다음의 시로 지었다 전한다. “ 高臺八尺盡頭顱 何止區區萬骨枯 矢石無情緣鬪勝 可憐降卒有何辜 팔 척 백기대 모두가 두골이니, 장수가 공 이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