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근세의 마녀 재판은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해소하는 분출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 교회와 세속적 권력 집단은 '마녀'라는 희생양을 사회 통합 기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마녀 재판에 대한 기원은 함무라비 법전에도 적혀져 있을 만큼 그 전례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특히나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 극성기를 이루었으며, 마녀 재판은 '백년전쟁'과 '30년전쟁'을 거치며 절정을 거칩니다. 마녀 사냥의 대상자는 가난한 사람 혹은 노령자 또는 약초로 민간치료를 시행하다 실패한 사람들이였으며 고발당한 사람들 가운데 70% 이상은 여자였는데, 그중에는 흔히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는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재산이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신분이 낮든 높든 이러한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