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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추락 후 인육을 먹으며 생존한 그들. ssul

오링어 2022. 3. 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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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공군571편 추락사고는

비행추락사고 중 잔혹하게 기억되기도 하는 사고 중 하나이다.

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


1972년 10월13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부유층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럭비팀인

올드 크리스천스 럭비클럽의 선수 전원을 태운 FH-227D기가 몬테비데오의 카라스 국제공항을 출발해

칠레 산티아고, 코모도로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 도착 예정이였다.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


계속된 기상악화로 몬테비데오로 되돌아갈지 위험을 무릅쓰고 안데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로 향할지 결정해야했다.



기장은 공군 대령이기도 하였고 이미 29번에 걸친 안데스 산맥 횡단 경험이 있었다.

페어차일드기의 고도 한계(약9,000m)로는 안데스 산맥을 바로 넘을 수 없었다.

따라서 기장은 안데스 산을 남으로 따라 내려가면서 돌고 나서 다시 북으로 가능 항로를 이용하였다.

기상악화로 기체는 강한 역풍으로 실제 속도가 줄어들었었고

기장은 이로 인해 안데스 산맥을 다 지났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때는 아직 안데스 산맥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름 아래까지 내려오고 나서야 기장과 부기장은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채고

고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미 기체의 배 부분이 안데스 산맥의 한 봉우리에 충돌하고 만다.

이후 오른쪽 날개는 완전히 분리가 되어 추락하고, 왼쪽 날개는 떨어져 가다건 힘으로 되돌아와 동체를 뚫고 만다.

비행기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승객 3명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추락한 쌍발 프로펠러 페어차일드 FH-227D


비행기는 앞부분이 수그러지면서 추락하는데 산등성이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게 눈속에 박힌 기체 속에 평균 1만3천피트의 산악지대에 최초 생존자 33명은 고립되게된다.

이 고도에서는 식물은 성장할 수 없으며, 15m 깊이로 쌓인 눈뿐이였다.



관제탑과 교신이 끊어지고 안데스 산맥에 걸쳐 수색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눈 덮인 산맥에서의 수색은 쉽지 않았고,

특별한 단서도 나오지 않았고, 고산지대 특성상 혹독한 기후로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2주뒤에서 수색을 종료하였다.



구조 직전 상황


사고 후 생존자들끼리 좀더 큰 부상자들은 구출하기도 하고 치료도 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의학생출신이 로베르토 카넷사와 구스타보 세르비노는 응급처치를 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으로 5명이 사망하였다.



사고가 난뒤에는 눈속에서의 아수라장은 지옥과 같았다.

추위와 공포에 부조종사는 자신의 권총을 집어 달라고 주변 청년에게 부탁하였으나

가톨릭 신자였던 청년들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다

부조종사는 결국 사망하게된다.



동체만 남은 비행기 잔해속에서 몸과 몸을 밀착해 추위를 견뎌내고

작은 초콜릿을 나누어 먹고, 눈을 녹여 수분을 보충하며 구조를 디라게 되었다.

눈을 녹이는것 조차 쉽지 않아 빈 와인병에 눈을 채우고 금속 막대기로 눈을 쑤시며

겨우겨우 녹여 물을 만들어 마셨다고 한다.



기내식마저 모두 동이나고 결국엔 눈속에 묻혀 있던 시체를 먹자는 방안이 나오기 시작했고

의학생 가넷사 또 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종교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로 강력하게 반대를 하기도 하였으나

그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시체를 먹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였다.

그들이 먹은 인육, 곧 시체는 그들의 친구와 급우였다.



그들은 라디오로 자신들의 수색활동을 듣고 희망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수색 중지소식을 듣고 절망감으로 그들은 시체를 먹기로 결단을 내린다.

인육을 먹기위한 핑계를 찾아 조종사의 과실로 사고가 났기때문에 저 사람때문에 이렇게 된거라고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며 첫 인육의 대상은 조종사, 그 다은은 부조종사가 된다.

시체에서 살을 잘라내에 기도를 드리고 인육 조각을 입에 넣고 삼키게 된다.



그러나 모두 다 인육을 먹은것은 아니였다.

거부한 몇몇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육체적으로 쇠약해진게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그렇게 버티다 산사태로 인해 또다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

동료의 사체를 또다시 먹기 시작한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건넌 산맥.


그러다 이들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산맥을 건너기 시작하였고

그러다가 농부를 만나게 되고 겨우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동체가 추락하지 72일째에 그 두 사람은 구조가 되었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하여 구출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희망을 다시 갖게된다.

구출 후 모습


첫 생존자 33명중 살아남은 16명은 모두 구조되어 샌디에이고 중앙병원에 운송되었다.

생존자 전원이 체중이 한계까지 줄어있었고 심각한 영양부족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구조직후에도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생존자들 기자회견


실제 샌디에이고의 어느 신문사가 추락현장 부근에서

먹다 남은 사람의 다리를 발견하여 신문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모든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생존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모두 고백하였다.



우루과이 공군은 추락현장에 병사를 파견하여 기체주변의 시체를 모아 합동 매장하였고

커다란 무덤에 십자가를 세웠다.

그리고 비행기의 잔해는 석유를 뿌려 소각하였다.



동료의 인육으로 생명을 지킨 그들은 죽은 사람 목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가슴에 새기고

현재도 그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생존자 모임


이 실화는 Alive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알려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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