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괴담

[2ch 괴담] 위험한 호기심. ssul

오링어 2022. 1. 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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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학교 뒷산 안쪽에는 우리만의 비밀기지가 있었다.


여러 개의 판자를 못을 박아 이어 세운, 제법 그럴싸한 비밀기지로 비나 눈은 피할 수 있는 한 평 반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방과후엔 그곳에 모여서 과자를 먹거나, 야한 잡지를 보거나 하는 등 마치 우리들만의 집 같은 느낌이었다.


나랑 신, 쥰, 떠돌이 개 두 마리. 이렇게 다섯이 비밀기지의 멤버였다.


5학년 여름방학. 비밀기지에서 하룻밤 자면서 놀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부모님들께는 ‘○○네서 잘 거야’라고 거짓말을 하고 각자 가진 돈을 모아서 과자나 불꽃놀이, 음료수 등을 샀다.


수학여행 때보다 두근거렸다.


저녁 5시쯤 학교에 모여서 뒷산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산을 오르면 우리들의 비밀기지가 나온다.


기지의 주변은 해피(수컷)와 다치(수컷)의 영역이기도 해서, 가까이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우린 두 녀석에게 “마중 나오느라 수고했어!”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우마이보-(굵직한 한 개짜리 막대과자)’를 하나씩 주었다.


기지에 도착해서 짐을 넣어두고, 아직 해가 남아있었기에 우리는 근처에 있는 호수로 가서 낚시를 즐겼다.


잡히는 건 황소개구리뿐이었지만. (참고로 잡은 개구리는 강아지들의 먹이)


그렇게 낚시를 하고 있으니 서서히 주변이 어두워졌고, 우리는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우리들보다도 해피와 다치가 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살 땐 제법 산 것 같았는데, 30분도 안돼서 불꽃놀이가 바닥이 났고, 우리는 일단 기지에 들어갔다.


어두운 시간에 기지에 있는 것은 다들 처음이라서, 전등 같은 것도 없이 달빛만 비추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벌레 우는 소리뿐이고, 손전등 하나 달랑 켜고 어스름한 작은 공간에 셋이서 있었다.


처음에는 다 같이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여자애 이야기, 선생님 흉 등을 보았지만,

대화가 끊기고 나자 사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풍덩- (호수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라던가,
‘바스락- (동물…의 발자국 소리?)’ 같은 것에 우리는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지금, 무슨 소리 나는 거 들었지?”
“곰이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등의 말들이 나오자 정말로 겁이 났다.


시간은 9시. 기지는 습하고 더웠으며, 모기도 있어서 도저히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밤중의 산 특유의 분위기에 휩싸여, 모두 여기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우린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기지는 너무 무덥고, 주위의 상황도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곰의 접근 등에 대한) 다 같이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이제 안심이구나 하며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손전등으로 땅을 비추어가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5분 정도는 해피랑 다치가 같이 내려가줘서 마음이 든든했는데 이내 기지로 되돌아갔다.


평소에 몇 번이나 다닌 길인데도, 밤이 되니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짐승들이 낸 30센치 정도 폭의 길을, 미끄러지지 않게 묵묵히 조심스레 걸었다.


그 때, 신이 뒤에서 내 어깨를 잡고 ‘누군가 있어!’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린 재빨리 그 자리에 몸을 숙이고 손전등을 껐다.


귀를 기울이자 정말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자박…자박…


두 발로 풀 길을 걷는 소리.


소리가 나는 쪽을 유심히 살펴보며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자 20~30m 떨어져있는 풀숲에 그 ‘누군가’ 가 있었다.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다른 손에는 기다란 봉 같은 것을 든 채 그 봉으로 풀숲을 헤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혼자라는 점에 공포심은 옅어지고
마음은 모두 유치한 호기심들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저 사람 뭐지? 미행해볼까?” 하고 묻자, 신도 쥰도 만면에 띈 웃음으로 ‘당연하지!’ 라는 말을 대신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자의 손전등 불빛과, 풀숲을 헤치는 소리를 따라서 우리는 조심, 또 조심하며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는 그 뒤로 약 20분 정도 더 산을 오르고는 멈춰 섰다.


우리는 30m 정도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자의 성별이나 모습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희미하게 사람 형태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멈춰 선 그는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뭔가 뒤적이기 시작했다.


“저 놈 혼자서 뭐 하는 거야? 곤충채집이라도 하시려고?”라고 내가 중얼거리자 신이 “좀 더 가까이 가보자.”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몸을 웅크리고, 떨어져있는 나뭇가지 등을 밟지 않기 위해 발로 땅을 스치듯 움직이며 아주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히죽대며 다가갔다. 어떤 골탕을 먹여줄지를 생각하며……


그 때,


캉!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캉!


또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쥰과 신을 돌아봤다.


그러자 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놈이야, 저놈.”


다시 고개를 돌려 유심히 살펴보았다.


캉! 캉! 캉!


뭔가를 나무에 박고 있었다.


아니,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 그것이 저주의 의식이라는 걸 금새 알았다.


이 산은 옛날부터 짚 인형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는 단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무서워져서 “그냥 가자”라고 말했지만,
신이 “저거……여자야! 잘 봐봐!”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쥰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지 않아? 더 가까이 가서 보자”하더니 둘 다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난 내키지 않았지만, 겁쟁이 취급 받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뒤를 따라갔다.


그 여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캉! 캉!’ 하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여자는 무언가 ‘경’ 같은 것을 읊어대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조금 옆으로 빠져서, 여자의 대각선 뒤 8m정도에서 나무에 몸을 숨겼다.


여자는 살짝 어깨에 닿는 정도의 머리에, 마른 체형이었고 발 밑에는 메고 온 가방과 손전등을 두고 사진(?) 같아 보이는 것에 계속해서 못을 박고 있었다.


이미 여섯 일곱 개쯤 박혀있었다.


그 때였다.


멍!!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거기엔 해피랑 다치가 꼬리를 흔들며 헥헥대면서,
‘뭐 하고 있어?’ 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신이 “와!...으아아아!!......” 하는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여자가 그야말로 귀신 같은 얼굴로, 한 손에는 쇠망치를 들고 “으아아~~앗!!!” 하는 괴성을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쥰도 벌떡 일어나서 신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러나, 난 왼쪽 어깨를 뒤에서부터 잡혀,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겨져 넘어지고 말았다.


드러누운 내 가슴에 ‘콰-악’하는 충격이 가해졌고, 나는 토할뻔했다.


어떻게 된 건지 순간 알 수 없었지만, 여자가 쓰러진 내 가슴을 밟고 서서 내가 여자를 올려다보는 형태가 되어있었다.


여자는 이를 악물고 보란 듯이 이를 갈며,
“읏!......크읏!!......”하고 뭐라 형용하기 힘든 소리를 내면서 내 가슴을 밟은 발로 나를 짓뭉개듯 눌러 비볐다.


아픔은 없었다.


이미 공포감에 아픔을 느낄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가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극도의 흥분상태인 것이겠지.


난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떼는 순간 쇠망치로 내리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었기에 여자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한다.


나이는 40대쯤인 듯한, 살짝 갸름한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아랫입술을 내밀 듯 이를 악물고 가늘게 몸을 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게는 그 시간이 10분? 20분? 얼마나 오래지났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여자는 나를 밟은 채로 몸을 숙였고, 얼굴이 점점 가까이 왔다.


그 때, 다치가 여자의 등에 올라탔다.


여자는 순간 당황하며, 내게서 발을 떼고 비틀거렸다.


거기에 해피도 달려와서 여자에게 엉겨 붙었다.


아마 두 녀석은 평소에 우리랑 같이 노니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나 보다.


나는 그 틈에 서둘러 일어나서 도망쳤다.


“빨리 와! 빨리!” 하고, 신과 쥰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난 불빛을 향해 달렸다.

퍼-억



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난 돌아볼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신과 쥰과 내가 산을 내려왔을 때는 12시가 넘어있었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가 쫓아올 것만 같아서 우리는 신네 집까지 뛰어서 갔다.


신의 집에 도착하고, 난 어째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극도의 긴장에서 해방돼서였을까?


하지만……쥰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비밀기지에는 못 가게 생겼네. 그 여자가 우릴 찾고 있을지도 모르고.”


나의 말에 쥰은,


“바보야! 내일 날 밝으면 가봐야지!” 라고 소리쳤다.


내가 엥??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신이


“네가 도망칠 수 있었던 건 해피랑 다치 덕분이야.
그 여자한테 뒤에서 맞을뻔한걸, 해피가 달려들어서 대신 맞은 거라고!”


그러자 쥰도


“그 여자, 다치도……다치도…………흑……”
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 신에게 듣기로는, 내가 여자에게 뒤에서 맞을뻔한 순간 해피가 여자에게 달려들었고 머리를 쇠망치로 맞았다고 한다.


여자는 다시금 나를 쫓아오려 했지만 다치가 발 밑에서 방해해서 다치의 머리도 내리쳤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는 우리 쪽을 쳐다보더니 쫓아오지 않았고 해피와 다치를 계속해서 망치로 내리쳤다고 한다.


우리는 그 길로 도망친 것이다.


신도 날이 밝으면 산에 가자고 했다.


물론 나도 동의했다.


진정이 되질 않아 밝아질 때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오전 내내 선잠을 자고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다들 그 ‘저주여자’가 무서워, 야구방망이, BB탄 총 등을 챙겨왔다.


산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

“아직 그 여자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신의 말에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길로 산을 올랐다.


낮이라 산속도 밝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들려와서,
지난밤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저주여자’와 만났던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더해갔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간밤의 일들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자리에 도착할 즈음에는 방망이를 쥔 손에 땀이 흥건해져 있었다.


나무가 보였다.


여자가 무언가를 박아대던 그 나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나무에는 어린아이의 사진(네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에 못이 잔뜩 박혀있었다.


아니,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나무의 뿌리 앞에, 심하게 훼손된 해피의 시체가……


온 몸은 피투성이에, 혀를 축 늘어트린 채, 이마에는 대못 하나가 박혀있었다.


우린 순간 숨이 멎었고, 가까이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본 적도 없는 벌레들과 파리가 꼬여있는 모습에,
우리는 죽음의 의미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난 해피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저주여자를 또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해피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당장에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때 쥰이

“다치……다치가 없어! 다치는 살았을지도 몰라!”
라고 외쳤다.


나도 다치만은 살았기를 바라며 우리는 비밀기지를 향해 달렸다.



비밀기지가 보이는 곳까지 달려왔을 때, 신이 갑자기 멈춰 섰다.


나와 쥰은 ‘저주여자?!’하는 생각에 얼른 몸을 숙였다.


조용히 신을 올려다보자, 신은 “…………뭐……뭐야…저게?” 하며 기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랑 쥰은 천천히 일어나 기지 쪽을 보았다.


뭔가 기지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기지 지붕에 뭔가가 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그곳엔 어젯밤 잊어버리고 왔던 쥰의 준비물주머니가 (쥰은 과자를 항상 준비물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기지의 지붕 밑에
무수히 많은 못으로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경악했다.


비밀기지도 저주여자에게 들켰구나……


신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방망이를 고쳐 잡고 기지의 문 쪽으로 다가갔다.


나와 쥰은 조금 뒤에서 BB탄 총을 겨누었다.


기지 안에 저주여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신은 천천히 문에 손을 뻗다가, 문고리를 잡음과 동시에 벌컥 열어젖혔다.


“으앗-!!!”


무언가를 보고 놀란 신이,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앉은 채로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물러났다.


나와 쥰은, 신이 뭘 보고 놀랐는지 알지 못한 채,
일단 총을 겨누고 기지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그곳엔……살해된 다치의 시체가 있었다……


“우와-앗!!!”


우리도 신과 같은 반응을 했다.


역시 다치도 해피처럼 이마에 대못이 박혀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 여자……미쳤어…… 웬만해선 이런 짓 안 하잖아! 끔찍한 인간한테 걸렸구나’ 라고……


지난 밤 이 산에 온 것을 사무치게 후회했다.


한동안 우리 셋은 다치의 시체를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던 중 신이, “야……!! 저거…………!!”


나와 쥰은 조용히 신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기지 안……벽과 바닥이 뭔가 이상했다……무언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



쥰, 저주한다, 죽어라……
온 벽과 바닥에, 못으로 새겨져 있었다.


난 질려버린 나머지 그 자리에 굳었다.


아니, 그보다도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이름을 들킨 거지??


그 순간 신이 외쳤다.


“준비물주머니야!! 거기 써있는 이름을 본 거야!!”


…!!!......


난 지붕 밑에 못박힌 준비물주머니를 보았다.


수 많은 못이 박혀있는 주머니에는 분명히 [5학년 3반 - ○○ 쥰] 하고 쓰여있었다.


쥰은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신도 울 것 같았다.


학년과 반, 이름이 저주여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다 틀렸다.


나도 신도 금방 잡힐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리들 전부 해피랑 다치처럼, 이마에 못이 박혀 죽게 되겠지.


신이 말했다.


“경찰에 알리자! 방법이 없어! 이제 도망칠 수 없다고!”


난 혼란스러움에,
“경찰에 말했다간, 비밀기지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어제 거짓말하고 여기 온 것도 다 들켜서 엄마아빠한테 혼날 거 아냐!” 라고 말했다.


냉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또, 당시에는 무엇보다도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이 가장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에도 쥰은 계속 울고 있었고, 우린 어떤 할말도 찾지 못했다.


쥰은 말없이 준비물주머니를 뜯어내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우리는 대화가 없어진 채, 일단 산을 내려왔다.


쥰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저주여자가 어디선가 우릴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흠칫흠칫 떨었다.


산을 내려오자 신이 말했다.


“이제 이 산에는 오지 말자. 당분간 근처에도 안 오면 저주여자도 우릴 잊어버릴 거야.”


나는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이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걸 그 여자한테 들키면 죽을지도 몰라.”


신은 끄덕였지만, 쥰은 아직도 눈물을 훔쳐가며 울고 있었다.


그 날은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셋이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2주 뒤 개학.


그런데 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신은 있었다.


나와 신은
‘쥰 녀석 혹시……저주여자에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우린 하교 길에 쥰의 집에 들렀다.


현관 벨을 누르자 밝은 목소리로 ‘네~’ 하며 쥰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내가 “쥰은요?” 하고 묻자
아주머니께선 “일부러 병문안까지 와줘서 고맙다. 쥰 지금 방에 있으니까 들어와.”
라고 하셨다.


나와 신은 쥰의 방으로 갔다.


“쥰, 들어간다.”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쥰은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생각 외로 멀쩡해 보이는 쥰을 보고 나와 신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신: 오늘 왜 안 나왔냐?

나: 걱정했잖아! 감기 걸린 거야?

쥰: …………


쥰은 말없이 만화책을 덮고는 침울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쥰의 어머니께서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들어오셔서
“한 열흘 전부터였나, 두드러기가 안 없어지는구나. 불량식품을 너무 먹어서 그런 건지.”
라고 말씀하시고는 웃으며 방을 나가셨다.


나랑 신은
“뭐-야 두드러기였어?! 사람 놀래키기는! 뭐 떨어진 거 주워먹었냐?”
하고 낄낄거렸지만, 쥰은 고개를 숙인 채로 웃지 않았다.


신이 “야……왜 그래?” 하고 묻자 쥰은 티셔츠를 벗었다.


몸에는 두드러기가 퍼져있었다.


내가 “두드러기잖아. 약 바르면 낫는 거 아냐?” 라고 말하자
쥰은 “이거……그 여자의 저주야” 라며 등을 보여주었다.


물론 등에도 두드러기가 많았다.


신이 “뭐가 저주야! 좀 잊어버려!” 라고 말하자 쥰은
“오른쪽 옆구리 좀 봐봐!” 라고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쪽 옆구리……확실히 두드러기가 가장 심한 부위이긴 했지만 왜 그걸 저주하고 연결 짓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쥰이 “잘 봐봐! 이거 얼굴이잖아!” 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살펴본 뒤 나랑 신은 둘 다 놀랐다.


분명 직경 5cm 정도로 사람얼굴……아니, 여자 얼굴 형상처럼 피부가 상해 부어있었다.


나랑 신이
“야, 네가 너무 과민한 거야. 물론 뭐……얼굴로 보자면 얼굴 같기는 한데……” 라고 하자

“딱 봐도 얼굴이잖아! 역시 나만 저주를 받은 거야!” 라고 말했다.


신과 나는 쥰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쥰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했다.


항상 온화하고 착하던 쥰이…………좀 달라져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빛도 힘이 없다.


분명 심적으로 쇠약해진 것이겠지.


나와 신은 그곳에 있기가 뭐해져서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 난 신에게 “넌 어떻게 생각해? 정말로 저주는 아니겠지?” 라고 물었다.


신은 “세상에 저주 같은 게 어디 있냐?!” 라고 말했다.


왠지 그 말에,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쥰은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신도, 쥰에게 전화하기가 그래서, 쥰의 상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 ‘쥰은 풍진 때문에 당분간 학교에 못 나옵니다’ 라고 반에 전했고 우린 그 말에 안심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학교에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 길에서, 트렌치 코트에 샌들을 신은 웬 아줌마가 오가는 아이들 얼굴을 노려보듯이 쳐다보고 서있더라’ 는 소문이……


방과후, 그 소문을 들은  나는 심하게 동요했다.


그 여자가 내 얼굴만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신에게 이야기했더니,
“괜찮아! 밤이라 잘 안보였을 거야. 그리고 봤었다 한들 잊어버렸겠지!” 라고 했다.


날 진정시키려고 그랬던 것인지 의외로 침착했다.


무엇보다 불안했던 건, 신하고 내가 집에 가는 길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쥰은 나하고 집이 가깝지만 지금 집에서 쉬고 있으니, 나는 혼자 가야 하는 것이다.


“당분간 집에 같이 가자! 무서워!” 라고 신에게 부탁했다.


신은 조금 답답하단 듯한 얼굴을 하더니 “쥰이 올 때까지만이야.” 라고 말했다.


그날은 트렌치코트여자(저주여자로 추정되는)와 마주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트렌치코트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신과 함께 하교한지 5일째가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쥰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선물로 학교급식에 디저트로 나온 오렌지젤리를 가져갔다.


쥰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여느 때처럼 아주머니께서 밝게 맞아주시며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쥰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두드러기는 거의 없어졌지만, 쥰은 “옆구리에 얼굴이 갈수록 커져가” 라며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와 신이 보기에는 오히려 전보다 나아져 보였다.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일 테지.


우린 트렌치코트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집을 나서려는데 쥰의 어머니께서 뒤따라오시더니
“쥰, 혹시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거니?” 하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보셨다.


물론 부정했지만, 진짜 이유를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로부터 3일 뒤, 그날은 우연히 나이토, 사사키, 나, 신 이렇게 넷이서 집에 갔다.


나이토는 덩치가 컸으며 사사키는 키가 작았다.


마치 만화의 콤비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저주여자’는 나와 신에게서 서서히 잊혀지려 하고 있었다.


소문의 트렌치코트여자도, 실재한다 한들 다른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역 앞에 있는 오락실에서 놀기로 하고
우리는 평소와 다른 길로 걷기 시작했다.


넷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던 중에
“엇?! 저거……트렌치코트여자 아냐?” 라고 사사키가 말하자, 나이토도
“으아!… 진짜다! 뭐냐…짜증나게……” 라고 중얼거렸다.


난 트렌치코트여자를 힐끔 보았다.


속으로 다른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여자는 한 손에는 마트의 봉투를 들고
아직 더워가 남아있는 아스팔트 길 위에 우뚝 서있었다.


얼굴을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신은 여자를 경계하는 듯, “눈, 마주치지 마!”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씩 여자와의 거리가 좁혀져 간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거리가 5미터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들어 우리들 네 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우리의 가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름표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필사적이었다.


얼굴을 한번 본 것만으로, 그 날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틀림없다. ‘저주여자’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스쳐 지나갔다.


언제 덮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지. 아니, 단 몇 초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이토가 “저 여자 눈빛 봤냐? 제정신이 아닌 거야” 하고 웃었다.


사사키도 “이 더위에 저렇게 입고……큭……” 라며 같이 비웃었다.


나와 신은 웃을 수 없었다.


사사키가 이어서 말했다.


“으아…들었나 봐. 아직도 보고 있어.”


난 엉겁결에 돌아보았고, ‘저주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무표정한 저주여자의 얼굴이
씨-익 하고 굉장히 음흉한 웃음으로 변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난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에 살짝 오줌을 지렸다.


‘들킨 건가? 내 얼굴을 알아본 건가? 그럼 왜 쫓아오지 않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이토가 “으엑-! 아직도 쳐다본다. 사사키, 네가 한 소리 들렸나 보다. 난 몰라~”
라며 사사키를 놀려댔다.


이젠 오락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갈래 길을 꺾어 돌자마자, 난 신의 팔을 잡고 “집에 가자!” 라고 말했다.


신은 잠시 내 눈을 보더니, “아 맞다. 오늘 학원가는 날이었지. 가야겠네.” 라며
장단을 맞춰주었고 우리는 뛰었다.


한참을 집과 반대 방향으로 뛰었고 나는 흥분해서 신에게 말했다.


“그 여자야! 그날! 분명해! 우릴 찾고 있었던 거야!”


신은 의외로 침착하게
“이름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학년도 반도 쥰의 준비물주머니 때문에 들켜있는 상태고……”


난 그렇게 침착하게 있는 신에게 화가 났다.


“어떡해 이제!! 꼼짝없이 잡히게 생겼잖아! 집도 금방 들킬 거야!!”


신: “역시 경찰에 알리자. 이대로는 안되겠어. 도와달라고 하자.”

나: “…………”


난 잠시 말없이 있었다.


확실히,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경찰한테 뭐라고 말해?” 라고 신에게 묻자,

“산……나무에 못박혀있는 사진, 해피랑 다치 시체 같은 거……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그 여자가 한 짓이라고 증거로 보여주면 경찰이 그 여자를 잡아줄 거야.”


난 수긍했다.


그 산에 다시 가기는 정말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바로 다음 날, 학교가 끝나면 뒷산에 올라가기로 했다.


내일 학교 끝나고, 뒷산으로 가자.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저주여자’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먼 길로 돌아 집으로 갔다.


평소엔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두 시간 들여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까지 들킨 건 아니겠지? 혹시 오늘 밤에 오면 어떡하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난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지 여태껏 몰랐었다.


이름이 들키고, 기지에 ‘쥰저주한다죽어라’ 라고 새겨져있었고...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쥰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이 “괜찮아. 그렇게 금방 들키지는 않을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친구로서 대등하게 대하고는 있지만 신은 나한테 꼭 형 같은 존재구나 라고.


역시 그날 밤은 잠들 수 없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며 무서워했다.


눈을 감으면, 씨-익 하고 웃던 저주여자의 얼굴이 보이는듯했다.


아침이 와서 학교에 가고, 수업을 받고, 학교가 끝난 오후 세시 반.


신과 나는 뒷산 입구에 왔다.


저주여자……해피와 다치의 시체……수없이 박혀있던 못들……


그날 밤의 일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 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은 말없이 산을 바라보고 있다.


신도 무서운 것이겠지.


‘아무래도……가기가 무섭다 라고 말해줘!’ 라고 해주길 내심 바랬다.


신은 주머니에서 일회용카메라를 꺼내 손에 쥐더니 나의 기대를 져버리고 “가자!” 하고 작게 내뱉고는 산으로 들어가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신에게 이끌리듯 뒤따라 달렸다.


신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나도 필사적으로 신을 뒤쫓았다.


혼자 있게 될까 봐 죽어라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도 무서웠던 거다.


그래서 주위를 보지 않으려고 달린 거겠지.


그곳에 점점 가까워져 간다.


생각도 하기 싫은 그날 밤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라, 두려움이 커져간다.


공포에 다리가 느려지기 시작할 때, 그곳에 도착했다.


그렇다.


저주여자가 못을 박아대던 곳

저주여자가 해피와 다치를 죽인 곳

저주여자에게 잡혀서 쓰러졌던 곳

저주여자와 만나버린 그 자리……


난 누군가가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갑자기 들어 주위를 살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다.


저주여자가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산 특유의 정적과 마음속의 공포가 맞물려, 다리가 떨려왔다.


멈춰선 나를 신경도 안 쓰는지, 신은 나무로 다가갔다.


뭔가가 눈에 들어온 듯, 신은 쭈그려 앉았다.


“해피……”


그 말에 난 다리의 떨림을 잊고 신 쪽으로 달려갔다.


해피는 이미 흙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개골이 드러나있었고, 살짝 녹이 슨 못이 박혀있는 채였다.


내가 못을 빼려 하자 신이 “잠깐!” 하고 막더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신의 침착함에 조금 놀랐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손을 가져갔다.


두개골에 박힌 못을 잡고 빼려던 순간,
뼈 속에서 본적도 없는 벌레들이 화-악 하고 쏟아져 나왔다.


“으악!”


난 황급히 손을 떼고 물러섰다.


우글거리는 작은 벌레들이 무서워서, 난 해피의 시체에 다가갈 수 없었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구역질이 올라와 게워내기 시작했다.


신은 아무 말없이 내 등을 문질러주었다.


난 그날 밤 해피의 죽음을 외면했고, 지금 또 다시 해피를 돌봐주지 못했다.


난 더없이 약하고 형편없는 인간이다.


신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못박힌 나무를 찍으려고 하더니
“응......? 야! 이리 좀 와봐!!”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를 부르는 신.


난 겁이 났지만 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거, 지난 번엔 없지 않았어?!” 하고 신이 뭔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못이 잔뜩 박힌 사진이 있었다.


응? 전에도 있었는…………아니! 사진이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번에 본 네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사진은 그 옆에 있다.


즉, 사진이 늘었다!






사진의 상태로 보아 2, 3일 전에 박아놓은 듯 했다.


전에 봤던 사진은 이미, 여자앤지 아닌지도 알기 힘들만큼 풍화되어 표면이 너덜너덜 해져있다.


새로운 사진도 네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인 것 같다.


이때 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난 순간적으로
새로운 사진이 내 사진이면 어떡하지?!! 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신은 카메라에 그 사진도 찍었다.


그리곤 “다음은 비밀기지에 새겨놓은 걸 찍으러 가자.” 하고는 또 달렸다.


난 어딘가에 저주여자가 있는 듯한 착각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열심히 신을 쫓아갔다.


비밀기지에 가까워졌을 때 난 위화감을 느끼고는, “신!” 하고 불러 세웠다.


문득 드는 위화감……


이쯤 오면 기지의 지붕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신도 바로 눈치챈 모양이다.


뇌리에 저주여자가 스쳤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심해져 왔다.


“뒷길로 가자.” 라는 신의 말에,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뒷길은, 산짐승 길을 따라 기지까지 오는 평상시의 코스가 아닌, 풀숲을 지나 기지의 뒤편으로 도달하는 코스를 말한다.


이 길은, 만에 하나 적이 기지를 공격해올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둔 길이다.


물론 놀이 삼아 만든 것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이야.


이 코스라면 기지에 혹 저주여자가 있다고 해도 발각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신과 나는 네발로 걷듯이 풀숲에 있는 터널을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그리고 기지의 뒤편 약 5m 위치에 왔을 때,
기지의 지붕이 안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박살이 나있던 것이다.


우리가 만들었던 비밀기지는, 그저 목재더미가 되어있었다.


잠시 분위기를 살폈지만 저주여자는 없었고,
우리는 풀숲을 빠져 나와 부서져버린 기지에 도착했다.


우린 산산조각이 나버린 비밀기지를 보고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기지는, 말하자면 우리 세 명과 개 두 마리의 또 하나의 집이었다.


기지의 잔해 한 켠에 커다란 돌이 떨어져있었다.


누군가가 이 돌로 내리쳐서 기지를 부순 것이겠지.


누군가가?............그야 아마도……저주여자가……


신이 말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편들 사이에서 '쥰 저주한다 죽어라' 라고 새겨진 부분을 위에 놓고 또 찍었다.


그때, 판자 사이에서 파리가 날아올랐고, 그 틈으로 다치의 시체가 보였다.


해피……다치……


비밀기지보다 소중한 두 녀석을 잃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통감했다.


신은 일어서서, “자, 이제 이걸 빨리 현상해서 경찰에 가져가자.” 라고 말했다.


우린 산을 내려왔고, 역 앞에 있는 파출소로 향했다.


이 카메라에 담겨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저주여자는 붙잡힌다.


그럼 끝나는 거다.


그 마음만으로 달렸다.


도중에 사진관에 들러 현상을 맡겼다.


30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우리는 가게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동안 신과는 거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저 사진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30분이 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알바생 같아 보이는 여자 점원이 우리를 불렀다.


나랑 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카운터로 갔다.


점원은 살짝 찝찝해하는 얼굴로
“현상 다 됐습니다. 확인 부탁 드립니다.” 라며 사진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뭐……현상한 사진이 개의 시체나 못박힌 여자아이의 얼굴 같은 것들뿐이니 찝찝한 얼굴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신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꺼내 모두 확인하고는
“예, 됐어요. 감사합니다.” 라며 계산을 했다.


우린 가게를 나와 즉시 파출소로 향했다.


이걸로 모든 것이 해결이다.


우린 역 앞 파출소로 뛰어들었다.


“응? 어쩐 일이니?” 안에 있던 젊은 경찰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우린 그 경찰에게 다가가 “도와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와 신은 그날 밤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증거사진도 하나하나 보여가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도, 저주여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를 일단락 마치자, 그 경찰은 부드러운 얼굴로
“부모님께는 말씀 드린 거니?”


우린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음-. 그럼 집 전화번호 좀 가르쳐줄래?” 하고 묻는 것이다.


신이 “부모님이 무슨 상관인데요? ‘우리’가 위험하다고요!” 하고 발끈하듯 따졌다.


참고로, 신의 부모님은 의사와 간호사시며 형은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의 학생이다.


우리 세 명중에 가장 유복한 집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엄한 집이기도 했다.


그날 밤, 거짓말을 하고 비밀기지에 가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나나 쥰도 그렇지만 신이 가장 심하게 혼날 것이다.


신은 “도와주세요! 경찰이잖아요!” 하며 바짝 붙어 섰다.


경찰은 쓴웃음을 지으며
“너희들 초등학생이지? 이런 건 부모님께 말해야 하는 거야.”
하고는 한동안 쳇바퀴 도는 소리가 오고 갔다.


결국 경찰은 “그럼……너희 담임 선생님 성함은 뭐니?” 라며 우리에게는 으름장과 같은 말을 했다.


뭐……경찰이야, 우리의 보호자 내지는 책임자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런 경우의 부모, 선생님이란
혼날 것이 무서워 피하고만 싶은 대상인 것이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속엔 눈앞의 경찰에 대한 불신감이 피어났다.


‘이대로 있다간 억지로라도 주소를 알아내서 집에 알리려고 할거야’

‘이 사람, 우리 이야기를 안 믿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랑 신이 이렇게나 도와달라고 하는데도 부모, 선생님 이야기만 한다.


우린 저주여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사진까지 가지고 있는데……


난 다시 한번 사진을 경찰에게 내밀며
“개를 이런 식으로 죽이는 녀석이라구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은 잠시 말이 없더니, 사진을 받아 들고는 황당한 말을 했다.


“음……이게……개라구?”


“……네?!” 신과 나는 놀랐다.


이 사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하고……또 경찰은 “아니, 너희를 안 믿는 건 아닌데, 음……좀 더 자세하게 알려줘 봐.


여기가 머리야?”


경찰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난 해피의 사진을 뺏어 들고
“그러니까……” 하고 설명을 하려다가 말이 멈췄다.


확실히, 이 사진을 객관적으로 보면 개의 사체로는 안 보일지도……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갈색으로 변색돼버린 뼈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털.


나랑 신은 해피가 죽은 다음 날에도 보았기 때문에, 부패가 됐다고 해도 원래의 형대나 쓰러져있던 각도, 모습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더러워진 돌에 걸레 같은 것이 걸쳐져 있는 것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냉정하게 다른 사진들도 살펴보았다.


판자에 새겨진 ‘쥰저주한다죽어라’, 소녀의 사진에 박힌 수많은 못들.


확실히, 저주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찰은 초등학생의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아까부터 부모, 선생님 소리만 해대는 건가?


난 여기 계속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꼈다.


어떻게든 엄마아빠를 부를 생각이다.


난 신에게 작게 귓속말을 했다.


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짓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신은 잽싸게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바로 뒤를 쫓아 파출소를 빠져 나왔다.


뒤에서 “야!!” 하고 경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뛰었다.


경찰이 뒤쫓아오는 낌새는 없었다.


아마도 경찰은, 장난치러 온 초등학생들이 거짓말이 들통날 것 같아지자 도망쳤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


나와 신은 경찰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충분히 확인한 뒤 길가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했다.


“이제 어떡하지?”

“그러게……”


우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지막 수단이었던 경찰마저 믿어주지 않아, 저주여자에게서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될 거야’ 라고 기대했던 만큼 충격이 컸다.


‘이대로라면……저주여자에게 집도 들켜서는……’

나는 무서웠다.


그때 신이
“당분간 그 여자하고는 안 마주치게 조심해서……” 하고 말하는 걸
“다 끝이야 이제! 쥰이 몇 학년 몇 반인지 들킨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라구!”
하며 언성을 조금 높이고 말았다.


“그런데 그 여자……우리한테 뭘 어쩌려는 생각이 있기는 한 걸까?”


“……뭐?”


신의 말에 되물었다.


“아니, 요전에 집에 가다가 그 여자하고 만났잖아.
어떻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때 할 수도 있었잖아.”


“……”


신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산……거기도 우리 사진으로 못을 박거나 한 것도 없었잖아.”


“……”


하긴, 산에 갔을 때, 새롭게 우리를 저주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기지는 부서져있었지만……


여자아이의 못박힌 사진은 새로운 것이 있었지만, 풀 네임이 알려진 쥰마저도 저주가 걸린 흔적은 없었다.


난 내심 반론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무튼 신의 말대로
‘어쩌면 그 여자는 우리 생각만큼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야. 잊어버린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은 다시 한번
“정말로 우릴 해치려고 한다면, 무슨 행동이던 취했을 거 아냐.”
라며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린 것도 우릴 찾으려던 게 아니라 사진 속의 여자애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잖아.” 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가……?’


나는 신의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보다도, 신의 말을 믿음으로써 억지로라도 안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현실도피에 가까운 것이었겠지.


나는, 신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주여자에게서 도망칠 방법이 없어져서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이겠지.


“그렇네. 곧 우리 일은 다 잊어버릴 거야.
아니 이미 잊어버렸을 거야……뭐야 젠장. 괜히 쫄았잖아!”

“정말. 그 여자 복수해버릴까 보다!” 하며 우리는 허세를 부렸다.


달리 생각하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신과, 저주여자의 험담 등을 나누었다.


주변은 어둑어둑해졌고, 우린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신과 갈라지는 길까지 와서

“내일 쥰 한번 보러 갈까?”

“오, 그러자.” 하고 서로 손을 흔들며 밝게 헤어졌다.


내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었다.


‘그렇지? 신의 말대로 저주여자도 우리 일 같은 건 잊어버렸겠지?’
하며, 마치 스스로를 달래듯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돌멩이를 차가면서 집으로 향했다.


하늘엔 구름도 없이 많은 별이 반짝였고, 아주 시원스런 밤하늘이었다.


지금까지 저주여자의 일로 고민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집에 가까워지고, 난 즐겨보던 TV만화가 떠올라 살짝 달리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탁……


늦여름의 동네 길에 내 발소리가 울렸다.


탁 탁 탁 탁 탁……


조용한 밤이었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내 발소리 외에, 다른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도 담이 작은 녀석이구나 하며 다시 달렸다.


탁 탁 탁……
(탁 탁……)




…………누군가……있다…….




난 다시 멈추고 주의 깊게 뒤를 살펴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다.


분명 내 발소리에 섞여서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도 쥰처럼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
저주여자에게 시달려서 예민해져 있던 건지.


잠시 동안 그렇게 서서 뒤를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뛰던 심장이 한 순간 덜컥 멈추는 줄 알았다.


15m 정도 뒤, 어느 집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모터 자전거의 뒤에 누군가가 쭈그리고 있었다.


아니, 숨어있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보이는 게 있었다.


……코트를 입고 있다.


나는 한동안 굳어있었다.


숨어있는 쪽은 내게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루엣이 제대로 보였다.


난 당황했다.


저주여자다 저주여자다 저주여자다 저주여자다 저주여자다


다리가 풀릴 뻔 했지만, 본능이었을까


다음 순간


도망쳐야 돼. 도망쳐야 돼. 도망쳐야 돼. 도망쳐야 돼. 도망쳐야 돼.


라고 내게 말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난 있는 힘껏 뛰었다.


운동회 때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바람을 스치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숨도 안 쉬고 뛰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을 향해 뛰었다.


집까지 앞으로 10미터.


‘살았다!!’


그러나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집을 들킨다.’


난 집 앞을 그대로 통과하여, 주택가의 좁은 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뒤따라오는 저주여자를 따돌리려고.


5분 정도를 엉뚱한 길로 뛰었다.


도중에 숨이 차서 걷기 시작하며 뒤를 보았다.


저주여자의 모습은 없었다.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시금 집 앞 10m까지 와서, 한번 더 주위를 살피고는 집으로 뛰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열쇠를 가지고 다녔던 나는 신속하게 현관을 열고 들어가 다시 문을 잠갔다.


“후우……”


안도감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단은 신에게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으려는 순간,
현관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


난 신발을 벗으려던 자세 그대로 멈추고 현관문을 보았다.


우리 집 현관은 알루미늄 새시에 불투명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인데,
유리너머......현관 앞에 누군가가 서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문을 사이에 두고 1m 거리에 저주여자가 있었다……!


난 숨을 멈추고 움직임을 멈춰서 인기척을 지웠다.


아니, 오히려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고양이 앞에 쥐라는 건 딱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겠지.


유리너머로 보이는 저주여자의 그림자를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저주여자는 가만히 서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때, 저주여자의 왼손이 서서히 움직였다


천천히 문의 손잡이를 잡더니, 철컥 하고 문을 움직이려 했다.


내 심장은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주여자는 문이 잠겨있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다시 가만히 서있었다.


난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러자 저주여자는 더 바짝 문에 붙어서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유리에 왼쪽 귀를 댔다.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유리에 저주여자의 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미 나는 긴장감이 극에 달해 토할 것 같았다.


심장의 고동은 최고조에 달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저주여자에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저주여자는 그렇게 2, 3분 정도 있다가 귀를 떼고 일어서서는, 이쪽을 보는 채로 천천히 한발씩 물러섰다.


유리에 비치는 저주여자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간 건가............??’


난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저주여자는 정말로 간 것일까, 내가 현관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나,
아직 집 주위에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내가 집에 들어오는 걸 보고 안에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방금 전 행동을 한 거라면……


분명 저주여자는 아직 집 주위에 있는 것이겠지.


난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이동했다.


불은 일체 켜지 않았다.


그랬다간 내 존재를 알리게 될 테니까.


난 거실로 가서 바로 수화기를 들고는, 손으로 외우고 있던 번호를 더듬어 신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벨이 세 번 울리자 신이 전화를 받았다.


“신?! 큰일났어! 왔어! 저주여자가 왔다고! 집을 들켰어!!”


난 작은 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라고 신이 말했다

“우리 집에 저주여자가 왔어. 어떻게 좀 해줘!”


난 신에게 매달렸다.


“진정해. 집에 아무도 없어?”

“없어. 빨리 도와줘.”

“일단 문단속을 해. 저주여자 지금 어디 있는데?”

“몰라! 근데 방금까지 집 앞에 있었어!”

“진정하라고! 우선 문 먼저 확인해. 알았어?”

“알았어. 보고 올 테니까 빨리 와줘.”


난 전화를 끊고 문단속을 하기 위해 먼저 화장실로 갔다.


물론 집 안의 불은 하나도 켜지 않고 오감을 동원해서 어두운 집안을 벽을 더듬어 화장실로 갔다.


우선 화장실의 창문을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고 잠갔다.


다음은 욕실. 욕실의 창문도 천천히 닫아서 잠갔다.


그리고 툇마루의 창문을 점검하기 위해 욕실을 나왔다.


벽을 더듬으며 걸어서 툇마루로 향했다.


그런데 순간 툇마루의 창문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평상시처럼 창문은 닫혀있고 레이스 커튼도 쳐져 있었지만,
왼쪽 구석……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얼굴을 붙이고, 쌍안경을 들여다보듯이 양손을 눈 옆에 대고 실내를 엿보고 있었다……!


집안은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에, 밖이 더 밝아서
이쪽에서는 그 모습이 훤히 보였다.

창문에……


저주여자가 마치 도마뱀처럼 붙어있었다……!!



난 주저앉을 뻔 했다.


동물의 본능인 걸까?


난 맹수를 발견한 초식동물처럼 얼른 구석에 쪼그려 몸을 웅크렸다.


온몸이 떨렸다.


‘저주여자에게 이쪽이 보이는 건가?’


저주여자는 한동안 그렇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창문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그러더니


끼릭 끼익 끼기긱……


불안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창문에서 났다.


저주여자가 오른손으로 창문을 긁고 있었다.


왼손은 여전히 눈 옆에 두고 실내를 들여다보면서……


키긱 끼기긱……


계속해서 소리가 났다.


난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뭔지 알 수 없는 저주여자의 기이한 행동이 무서웠고 두려움에 목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주여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다급하게 도망치듯 사라졌다.


난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창문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창문 저편의 도로에서 밝은 불빛이 깜빡깜빡 하는 것이 보였다.


‘경찰이 온 거야!’


난 상황을 이해했다.


우연히 지나가던 순찰차를 보고 저주여자가 도망간 거구나!


난 그 뒤로도 한참을 쪼그려 앉은 채로 떨고 있었다.


따르르르릉……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전화 창을 보니 신의 집에서 온 전화였다.


난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으응……밖에서 들여다보려고 하고 있다가……어디로 갔어.”

“그래? 부모님 오셨어?”

“아니, 우연히 경찰차가 지나갔는데, 그거 보고 도망친 것 같아.”

“그랬구나~ 다행이다. 내가 경찰서에, 너희 집 근처에 수상한 사람 있다고 신고했거든……그런데 이제 집까지 들켰으니……부모님께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

“나도 오늘 말할 테니까, 너도 말해. 이제 진짜 위험해.”

“……응……”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30분쯤 뒤에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난 집안에 불이 꺼진 채로 현관으로 달려가서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도감에서 였을까……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보고 있었지만, 난 한참을 울고 나서 “죄송해요……” 하고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부터 방금 전의 일까지, 모든 걸 이야기했다.


이야기 도중에 아빠도 돌아왔고, 아빠에겐 엄마가 이야기했다.


설명이 끝나고, 아빠가 말없이 툇마루의 창문을 살피러 갔다.


창문은 예리한 무언가에 심하게 긁혀있었다.


‘예리한 무언가’가 대못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날 혼내지 않으셨다.


엄마는 날 꽉 안아주었고, 아빠는 경찰에 전화를 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경찰이 왔다.


경찰에게는 아빠가 설명을 하셨다.


나는 엄마하고 거실에 있었는데, 잠시 뒤에 경찰이 와서 ‘그날 밤’의 일을 물었다.


해피와 다치……나무에 못박힌 여자아이의 사진……비밀기지에 새겨진 쥰의 이름……
집에 오다가 길에서 마주쳤던 일에 대해서도……
저주여자와 관련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일까지도……


감식반처럼 보이는 사람도 와서는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창문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것들 중에서, 경찰이 가장 자세하게 물어본 것은 소녀의 사진에 대해서였다.


생김새는 어땠는지, 본 적이 있었는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 후엔 뒷산의 지도를 그려주었고, 다음날 경찰이 조사하러 가겠다며 집 주변의 순찰강화를 약속하고는 철수했다.


결국,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 있다가 신과 쥰의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른들끼리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저주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학교에 뭐라고 말할지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그날 밤, 난 수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 잤다.


창피한 기분은 조금도 없었고, 그저 저주여자가 무서워서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깨워주셨을 때는 이미 오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각이잖아!” 하고 허둥대는데 엄마께서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어.” 라고 하셨다.


이미 학교에 사정을 설명하신 모양이었다.


아빠는 출근하신 뒤였지만 엄마는 아르바이트에 나가지 않으셨다.


‘아마 신이랑 쥰도 오늘은 집에서 쉬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부러 전화는 하지 않았다.


신은 어쩌면 엄격한 부모님께 혼이 났을 테고, 쥰의 부모님은 쥰이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한 진짜 이유를 아시고 충격을 받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방에 박혀서 저주여자가 어서 경찰에 잡히기만을 바랬다.


하루빨리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어째선지 저주여자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신경 써주시는 거라고 생각해, 나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방에 있는데 퍽- 하고 벽의 바깥쪽에서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난 순간적으로 ‘신이다!’ 라고 생각했다.


신은 나를 부를 때 현관의 벨을 누르지 않고
창문에 작은 돌을 던지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난 창문으로 밖을 보았다.


집 앞 골목에 있는 전봇대에 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고 없었다.


어디 숨어있는 건가 싶어 보이는 범위는 다 살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내 방 아래 쪽 마당에서 꺅! 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어 아래를 봤다.


그곳에선 엄마가 손을 입에 가져간 채, 지면의 무언가를 보고 떨고 있었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엄마는 내 목소리에 흠칫 놀라더니 나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말없이 벽을 가리켰다.


난 불길한 느낌으로 엄마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거기엔 뭔가 걸쭉한 듯한 보라색의 액체와 젤리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방금 전의 팍- 했던 소리는 이것이었겠지.


시선을 엄마의 발 밑으로 옮겨, 그 주변을 찾았다.


그곳엔 내장이 튀어나온 커다란 황소개구리의 시체가 떨어져있었다.


엄마는 한동안을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난 바로 저주여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저주여자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거실로 뛰어들어 경찰에 전화를 했다.


엄마의 얼굴이 파래져있었다.


아마 이때 처음으로 저주여자가 정상이 아니란 걸 느낀 거겠지.


그렇다.


그 여자는 정상이 아니다.


지금도 분명 개구리를 던지고 나서 나나 엄마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죽거리고 있을 테지.


분명 어딘가 가까이에서 날 보고 있을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경찰은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저주여자에게는, 우리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새장과 같은 것이다.


항시 감시 당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에 경찰이 왔다.


어제와는 다른 두명이 왔다.


한 명은 외벽이랑, 저주여자가 있었을 골목 등을 조사했고 다른 한 명은 나와 엄마에게

“뭔가 보았습니까?”

“상황이 어땠지요?”

같은 막연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했다.


마지막에 경찰은 불안을 부채질하는 말을 했다.


“어제도……뭔가 일이 있었지요?

아마 범인은 금방이라도 이런 짓을 또 할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울컥해서
“그 저주여자라구요! 코트를 입은 40대의 여자라구요! 빨리 잡아주세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경찰은 “아까, 뒷산을 살펴보고 왔어. 강아지의 시체도, 판자에 새겨진 친구의 이름도, 그 여자아이의 사진도 발견했어.

이제 그것들을 조사해서 범인을 반드시 잡을게.”
하고는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더니, 엄마와 따로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남편 분께 연락을……” 같은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벽에 묻은 개구리의 흔적과 그 시체를 사진으로 찍고 한 시간쯤 지나고 경찰들은 돌아갔다.


잠시 뒤에 아빠가 왔다.


아직 5시 전이었다.


아마 걱정이 돼서 빨리 오신 거겠지.


저녁 준비를 하시는 엄마도, 신문을 보시는 아빠도 말이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 하시는 게 느껴졌다.


물론 나 자신도, 다음엔 언제 저주여자가 올지 몰라 너무 불안했다.


그 날의 저녁식사는 모두가 말이 없었다.


TV소리만이 방안에 울렸다.


그리고 밤 11시가 넘었을 무렵.


다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방범차원에서 1층 거실의 불은 계속 켜두기로 했다.


셋이 같은 방에서 잤다.


물론 잠은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갑자기 현관 쪽에서

“가만있어!!”

하는 강압적인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으아-앗……크윽……!!”

하는, 귀에 익은 괴성……


저주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모두 벌떡 일어났고, 아빠가 황급히 현관으로 향했다.


난 엄마에게 꽉 안긴 채로, 둘 다 방에 남아있었다.


찰칵 찰칵……드르르륵


아빠가 현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다시 한번

“으이익! 젠장…..!!”
하고 또 다시 저주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마!”
하고 남자 목소리도 들렸다.


이때 나는
‘경찰이다! 저주여자가 경찰한테 잡힌 거야!!’ 하고 사태를 파악했다.


저주여자는 계속해서 괴성을 질러댔다.


난 무서워서 엄마 품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때 아빠가 와서 “범인이 잡혔다. 네가 산에서 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해주었으면 한다는데. 괜찮겠니?” 하고 물으셨다.


물론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걸로 모든 게 끝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응…………”
하고 대답하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현관으로 갔다.


현관 앞에서는 저주여자가

“너~!! 크-읏!!......너까지!! 왜 너까지 날 이렇게 괴롭혀?!!” 하며 무섭게 소리를 질러댔다.


난 다리가 굳어버렸지만, 아빠가 내 어깨를 안아주었고, 두 명의 경찰에게 붙들려있는 저주여자의 앞에 섰다.


난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내 발 밑만 보고 있었지만
아빠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셔서, 시선을 천천히 저주여자에게로 옮겼다.


양 어깨를 경찰에게 눌리고, 턱도 지면에 쓸리는 상태에서 저주여자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꽤나 저항했는지,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핏발이 서서 들개처럼 침을 턱밑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놈!!!......너~!! 얼마만큼 날 못살게 구는 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며, 저주여자는 버둥대고 있었다.


그것을 제압하고 있던 경찰이 “틀림없니? 산에 있던 게 이 여자 맞지?” 라고 물었다.


난 저주여자의 기에 눌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경찰은 바로 수갑을 채우고는
“당신을 방화미수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라고 말했다.


수갑이 채워진 뒤에도 계속 괴성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경찰 두 명이 붙어서 경찰차로 연행했다.


그리고 경찰 한 명만 다시 돌아와서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댁 앞을 순찰하고 있었더니 사람 그림자가 보여서요. 저 여자……였습니다만……
쪼그리고 앉아서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는 거에요.
현관 앞에 신문더미 놓아두셨지요?”

“아뇨, 둔 적 없는데요……” 하고 엄마가 대답했다.


“음, 그럼 이것도 저 여자가 준비한 건가 보네요.” 하고 무언가를 가리켰다.


거기엔 신문더미가 있었다.


분명 우리 집에서 보고 있는 신문이 아니었다.


경찰이 “음?” 하고 뭔가를 발견한 듯, 신문더미 사이에서 무언가를 빼냈다.


나무 판자……


거기에는 ○○○焼死祈願 (불에 타 죽기를 기원한다) 라고 내 풀 네임이 새겨져 있었다……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내 이름도 알아냈었구나!


만약 경찰이 순찰을 돌아주지 않았다면……살짝 정신이 아득해졌다.


엄마는 울면서 나를 끌어안고는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경찰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사실은 저 여자……조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요.

○○정(동네)에 살고 있는데요. 거기서도 항의가……뭐, 동정하는 분도 계시지만요.”
하고 저주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1년 전에……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대나 봐요. 그 후로 정서불안이랄까 정신분열이랄까……주변 이웃들하고도 마찰이 잦아졌구요.

산에서 발견한 여자아이 사진으로, 그 여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1년 전의 교통사고……여자아이가 도로에 뛰어드는 걸 핸들을 꺾어서 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남편이랑 아들이 죽었어요.

여자애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지만, 후에 그 아이 집에도 여러 가지로 괴롭히며 못살게 굴고 있다나 봐요.

그래도, 사고가 사고였던 지라 여자애 집에서는 아무 신고도 안 하고 있구요..

그 애를 어지간히 원망하고 있는 거겠지요.”


난 그 이야기에 동정심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주여자의 강한 집념이 섬뜩하게 전달되어왔다.


무엇보다, 경찰도 인정하는 정서불안에 정신분열……


그렇다면 금새 석방되는 건 아닐까……?


그 후에 또 다시, 저주여자의 존재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지내야 하는 건가……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안도감 보다는 절망감이 마음속에 퍼졌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일이 있고부터 5년이 흐른뒤..


나, 신, 쥰은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는 서로 만나는 일도 없이, 각각 자신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저주여자 사건을 잊을 수는 없었지만, 공포심은 많이 옅어져 있었다.


그러던 고1때의 겨울방학. 반가운 녀석, 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 오랜만이다.”


인사를 건네자 쥰은 적당히 받아넘기고는
“사실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다리하고 허리를 다쳐서 입원해있어.”

“뭐냐 쪽 팔리게……어느 병원인데? 심심하니까 놀러 오라고?”

“그것도 있긴 한데……너, 저주여자 기억하냐? 그 일 말고 얼굴……기억해?……”

“……뭐야?......뭔데 갑자기……”

“……밤마다 회진 끝나고 나서……이상한 여자가 훔쳐보는 것 같아……실실 웃으면서……”


쥰의 말을 듣는 순간, 저주여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 만났던 그날 밤의 이를 악물고 있던 표정.
하교 길에 보았던 섬뜩한 웃음


집 현관에서 보았던……미친 듯이 절규하던 모습……


그 뒤로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잊혀지지가 않았다.


트라우마였다.


난 쥰에게
“뭔 소리하는 거야……이제 잊어버려. 너도 진짜 겁 많다.” 라고 대답했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응, 그래야지……이런 일만 생기면 괜히 신경이 쓰여서……”

“그런 건 옛날하고 똑같네.”


난 여유를 보였다.


나 자신도 그 날 이후 전혀 성장하지 못했으면서.


그리고는 입원한 병원을 묻고
“조만간 야한 책 사가지고 병문안 갈게.”
라고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는 데 뭔가의 불안감에 가슴이 떨렸다.


저주여자……쥰의 그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전화를 끊은 뒤 한동안 생각했다.


‘이제 와서 저주여자가 다시 나타날 리가 없어.

그리고 그 여자는 붙잡혔잖아……석방된 건가?

아니 애당초, 우리가 저주여자에게 뭘 어쨌다는 거야?

그저 그 여자의 저주의식을 본 것뿐인 데.

우리가 치른 대가는 너무나도 커.

우연히 밤중에 산에서 만나서는 봉변을 당했잖아.

우린 저주여자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어.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고.

저주여자는 우리에게서 해피랑 다치를 빼앗고, 비밀기지도 부수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고.

저주여자가 아무리 집념이 강하다고 해도
아직까지도 우리를 노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이런 생각하기는 뭐하지만, 원망하려면 사진의 여자애를 원망하는 게 맞잖아.’


난 어거지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틀 후, 난 아르바이트를 쉬고 서점에서 야한 책을 세 권 산 뒤 쥰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쥰을 만난다는 두근거림과 전화로 들었던 이야기에 대한 두근거림이 뒤섞여
복잡한 마음이었다.


점심 때가 지나서 병원에 도착했다.


쥰의 병실은 3층.


난 쥰의 이름표를 찾았다.


303호실.


6인실에 쥰의 이름이 있었다.


병실의 가장 안쪽.


왼편 창가 침대에 쥰의 모습이 보였다.


“야, 오랜만이다.”

“오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쥰이 생각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안심했다.


야한 책을 건네자 쥰은 새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리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쥰과 있으니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굉장히 즐거웠다.


시간은 금새 흘러서 면회시간이 끝나갔다.


“자, 그럼 슬슬 돌아갈……”

“저기 말이야……전화로도 이야기했지만……”


쥰이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언가?......아니……


“저주여자 말이야?”

“기분 탓이겠지 하는 생각은 하는데, 항상 이 시간 때쯤에 오는 아줌마가 있어서…… 뭔가 그……찜찜하다고 할지……”


나는
“그러니까, 기분 탓일 거라고. 쫄지마 쫄지마.”
하고 짐짓 강하게 말했다.


그러자 쥰도 조금 울컥했는지
“아 그래서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쫄아서 미안하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난 분위기를 풀려고 쥰에게 사과하려 했다.


그 때


드르르륵


복도에 짐수레의 바퀴소리가 울렸다.


쥰이 ‘왔다……’ 하고 중얼거린다.


난 시선을 병실 입구로 돌렸다.


드르르르륵


짐수레가 병실 앞에서 멈춘 모양이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거기엔 위아래로 감색 작업복을 입은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뭐야, 놀래키지마. 쓰레기 치우는 아줌마잖아……”
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줌마는 환자 각각의 쓰레기통을 갈고는
마지막으로 쥰의 침대로 왔다.


쥰은 작은 소리로


“봐봐.”


난 아줌마의 얼굴을 슬쩍 봤다.


“……!!......”


난 순간 숨이 멎었다.


‘닮았어!......아니, 저주여자……인 건가??’


굳은 채로 한동안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아줌마는 그런 날 슥 보고는 꾸벅 하고 목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쥰이
“어때? 아니야? 내가 괜히 겁먹은 건가?” 하고 물었다.


나는
“전혀 아닌데? 그냥 청소 아줌마잖아.”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닮아있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인가?


“그럼 슬슬 갈게. 괜히 이상한 생각 말고 얼른 퇴원이나 해.” 하고 말하자

“그러게. 그 여자가 병원에 있을 리가 없지.
니가 아니라고 하니까 안심이 된다. 또 와, 심심하니까.” 라고 밝게 대답했다.


난 병실을 나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머릿속에서 좀 전의 아줌마의 얼굴이 떠나가질 않는다.


저주여자의 얼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저주여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미쳐있는 느낌이다.


아까의 아줌마는 온화한 표정이었다.


만약 좀 전의 아줌마=저주여자 라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 그냥 닮은 사람인 거야 라고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왠지 병원에 있는 것이 무서워져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도 저주여자=청소 아줌마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역시, 신경이 쓰인다.


그 날은 잠이 들 때까지 그것만 생각했다.


다음날, 난 청소 아줌마가 신경 쓰여서, 아르바이트를 빨리 끝내고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병원까지 가는 데는 30분.


도착했을 때는 8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면회시간도 이미 끝나있었다.


청소 아줌마도 이미 가고 없을 것은 분명했지만, 후문으로 들어가서 쥰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가보니, 쥰은 커튼을 완전히 닫고 있었다.


‘자나?’ 싶어서 커튼을 살짝 열고 틈새로 들여다보았다.


“우왓!”


쥰은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놀래키지마!” 하면서 무언가를 배게 밑에 숨겼다.


야한 책을 보고 있었나 보다.


난 책 이야기는 들추지 않고
“심심할까봐 와준 거 아냐.” 하고 쥰의 어깨를 토닥였다.


쥰은 조금 머쓱해하며
“어, 딱 요 때가 심심해……로비에 가서 뭐라도 마실래?” 라고 말했다.


난 휠체어를 침대 옆으로 가져와서, 쥰의 겨드랑이를 잡고 휠체어에 태웠다.


“로비는 1층이니까 간호사한테 들키지 않게 가야 돼.”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린 살금살금 마치 도둑마냥 1층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몇 번인가 간호사와 마주칠 뻔할 때마다 기척을 죽이고 숨기도 하며 겨우겨우 로비에 다다랐다.


낯하고는 달리 로비는 깜깜해서 불빛이라고는 자판기와 비상등 불빛이 전부였다.


쥰이
“캄캄한 데를 너랑 같이 다니니까……그 때가 생각 난다……” 라고 했다.

“그러게. 그 때 뭐 하러 그 여자를 미행해가지고는……”
나의 말에 쥰은 조용해졌다.


난 오늘 병원에 온 이유, 즉 청소 아줌마에 대해 쥰에게 말할까 했지만 주저하고 있었다.


쥰은 앞으로 한 달을 여기 있어야 하는데……그런 말을 하는 건……하고.


또 그때처럼 두드러기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쥰이
“너, 그 아줌마 일로 온 거 아니야?”


난 엉겁결에
“응? 무슨 소리야?” 하고 모른척했지만 쥰은

“그렇지? 역시……닮았어……아니, 저주여자일수도 있는 거지?” 하고 진지하게 다그쳤다.


난 그런 쥰의 분위기에 밀려서
“확실히……닮긴 했어. 분위기는 달랐지만……닮았어.”


쥰은 고개를 숙이며
“역시……전에 전화로도 말했었지만”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쥰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입원하고 이틀째 되는밤에 말이야..

다리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이 안 오는 거야.
움직이기도 힘들고, 불도 다 꺼져있고,
할 수 없이 눈 감고 자려고 노력했지.

그러다가 서서히 막 자려는데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간호사겠거니 하고 무시하려고 했는데, 뭔가 계속 숨소리 같은것도 들리는 거야.

옆 침대 환자 숨소린가 싶어서 실눈을 뜨고 보니까
내 침대 커튼이 3cm 정도 열려서는, 누군가가 그 틈으로 날 보고 있는 거야.

날 보고 웃고 있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어.

너무 무서워서 자는 척 했는데 그대로 잠이 든 건지, 눈 떠보니까 아침이더라고.

나중에 생각이 드는 게……그 웃는 눈……본 적이 있다 싶은 게
맞아, 청소 아줌마하고 똑 같은 거야……”


섬찟하게 웃는 눈……나도 기억이 있다.


저주여자의 그 얼굴과 눈빛을 마주대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쥰이 말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쥰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 청소 아줌마 청소하러 왔을 때 쓱 보면, 곧잘 눈이 마주쳐.

은근히 날 계속 보는 거야.

알듯 말듯 묘하게 웃어가면서……”


이 말을 듣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저주여자=청소아줌마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역시 그랬구나.


사회로 복귀 한 거였어.


캔 커피를 쥔 손이 살며시 떨렸다.


결코 추워서가 아니다.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전에 느꼈던 그 공포를 몸이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내 뒤쪽에서 불빛이 비춰졌다.


“거기요!”


돌아보니 병원 내를 돌아보던 간호사가 서있었다.


“쥰!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있었니? 불꺼지고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그리고 친구도! 면회시간은 벌써 끝났잖아요.”
하며 꽤나 화가 나있었다.


쥰은
“네, 네. 또 올 거지? 간다.” 라며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어주어 돌아갔다.


“응, 아무튼 조심하고.” 라고 대답하고 나도 슬슬 돌아가기 위해 들어올 때 통과했던 긴급환자용 출입구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밤중의 병원은 정말로 음산하다.


방금 전까지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해서 그런 건가 하면서 걷고 있는데


“……응?......”


복도 끝에……누군가 있다.


저건……청소 아줌마!? 아니……저주여자??


저주여자 같이 보이는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틀림없다. 저주여자다.


출입구 근처에서 뭔가 하고 있다.


난 얼른 몸을 숨기고 저주여자를 살폈다.


나를 눈치채진 못한 채로 뭔가 하고 있는 듯 했다.


커다란 봉투에서 부스럭대더니 다른 봉투에 나눠 담고 있다.


이후에도 저주여자는 이쪽은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혹시 병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는 건가?’
우리 동네는 분리수거가 원칙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때 뒤에서


“아직도 있었니!? 나도 놀고 있는 거 아니니까 말 좀 들어줄래??”
라며 좀 전의 간호사가 나타났다.


난 덜컹해서
“아, 죄송해요. 갈게요.”
하고는 출구 쪽에 눈을 돌렸다.


저주여자가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에휴 참……”

간호사는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순찰을 돌러 갔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저주여자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어쩌지? 도망쳐야 하나? 간호사를 쫓아가서 도움을 청할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고 심장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주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자, 저주여자는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응??......’


난 그 예상 밖의 행동에 당황했다.


난 속으로 ‘내게 달려든다. 날 계속 쳐다본다. 날 보며 슬며시 웃는다’ 같은
나하고 관련된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그렇게 우뚝 서서는 저주여자를 보고 있었지만 저주여자는 그런 날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묵묵히 분리수거를 계속 하고 있었다.


뭔가 작전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내 머리에는 한 가지의 생각이 더 떠올랐다.


저주여자는 청소아줌마와 동일인물이 아니다? 역시 닮기만 했을 뿐 다른 사람인가??
나랑 쥰이 너무 자기 생각에 갇혀있던 건가? 정말로 다른 사람인 걸까?


그렇게 고민하며 서 있는 동안에도 그 여자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다.


난 마음을 굳히고 출구로 걷기 시작했다.


즉 그 여자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점점 더 다가가고 있지만 그 여자는 전혀 이쪽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난 그 여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걸었다.


금새 아무 일도 없이 난 그 여자의 등뒤에까지 다다랐다.


여자는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대량의 쓰레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역시……다른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나를 확하고 뒤돌아보더니 말을 했다.


“……많이 컸네……”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많이 컸네?......많이 컸네??
이 사람은 내 과거를 알고 있다? 저주여자??
정말로 저주여자인 건가?’


여자는 작업을 중단하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난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마 두려움이 그대로 나타났을 것이다.


여자는 내 앞에 와서 말했다.


“완전히 어른이 다됐네……몇 살이야? 고등학생?”


난 여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날 놀리는 건가?
내가 겁먹은 모습을 즐기고 있는 건가?
아무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자


“친구도……많이 컸던데……쥰 말이야……
다리가 부러져있는 게 안됐던데……너도 조심해서 다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어버린 건가?


우릴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의 말이 이거야??


여자는 한층 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친구 한 명 더 있었잖아……잘 있어? 그 까무잡잡한 애……”


신!......


뭐야 이 여자! 무슨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정상이 아니야.


일부러 그러는 건가? 뭔가 목적이 있는 건가?


난 저주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행동을 살폈다.


“그 때는 미안했어. 용서해줄래?”


저주여자는 더욱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대꾸할 말이 없던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 더 빨리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여자 정말로 사죄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뭔가 꾸미고 있는 건가?


여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너희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어. 정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더 다가왔다.


거의 숨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까지 붙어 섰다.


예전과는 달리 그여자에 비해 키도 내가 20Cm가까이 컸고, 덩치도 당연히 크다.


‘손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날려버리겠어.’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저주여자는 날 올려다보며 내 눈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는 원망, 미움, 분노 등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눈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땐 정말 어떻게 됐었나 봐... 심한 짓을 하고 말았어...”


저주여자는 계속해서 사죄의 말을 했다.


난 그 자리의 긴장감을 견딜 수 없어져서
결국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 나왔다.


혹시 쫓아오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뒤돌아보았지만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허탈했다.


달리다가 멈춰 서서 생각했다.


‘방금 그 말은 정말로 진심으로 사과를 한 건가?’


난 저주여자를 믿을 수 없었다.


의심만 들었을 뿐.


그런 사건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난 아까의 장소로 되돌아가보았다.


그곳엔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저주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정말로 반성한 건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저주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방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나?


옛날에, 마치 귀신처럼 해피랑 다치를 죽이고
나를, 신을, 쥰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이고 불까지 지르려 했던 사람이 ‘미안해’ 라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변한 건가?


의심에 사로잡혀서 남을 믿을 수 없는 차가운 인간이 돼버린 건가?


저주여자를 믿어주면 과거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한번 더 저주여자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난, 저주여자를 다시 한번 만날 것과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난 아르바이트를 쉬고 병원으로 갔다.


먼저 쥰을 찾아가서 지난 밤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은 저주여자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쥰은 처음에
“저주여자는 변하지 않았어!” 라며 내 생각에 반대했었지만
평생을 이대로 저주여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거냐는 내 질문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저주여자랑 만난다면……나도 같이 봐.” 라고 수긍해주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시간은 흘러,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림과 동시에


드르르르륵


복도 안쪽에서부터 쓰레기운반수레의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드르르르륵!


수레 소리가 병실 앞에서 멈췄다.


병실 문이 열리고, 작업복 차림의 저주여자가 가볍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쥰은 그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저주여자는 안쪽의 침대부터 차례로 쓰레기통을 비워갔다.


“수고하시네요.”


환자로부터 인사를 받자 목례를 하고는 다시 작업을 하는 저주여자.


과거의 저주여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리고 드디어 저주여자가 쥰의 쓰레기통을 비우러 왔다.


저주여자는 우리와 전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목례만 하고는 쓰레기를 치웠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저주여자를 보고만 있었는데


쥰이 갑자기..


“뭐에요 아줌마!?” 하며 언성을 높였다.


저주여자는 작업을 하던 손이 딱 멈추며 그대로 정지했다.


쥰은 계속해서


“아줌마 나 알고 있었죠?! 나한테는 사과 한마디 없어요?!!”


난 당황했다.


쥰이 그렇게 화를 내며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주여자는 숙이고 있던 그대로
“미안해……” 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쥰은 순순히 사과하는 모습에 놀란 것인지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줌마,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저주여자는 이쪽을 보며


“정말로 미안해요……내가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쥰군이……이렇게 사고를 당하고……내가……그런 짓을 해서……정말로 미안해요”


나와 쥰은 더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뭔가……지금 서로 하는 말이 다르다……


나는 “아니, 전에 개한테 몹쓸 짓 한 것도 그렇고, 우리 집 일도 그렇고 전부 다요!”
라고 말했다.


저주여자는
“정말로 미안해……내가……내가 그런 짓만 하지 않았다면……이런 사고는……정말 미안해.”

하며 울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실 내의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병실 내에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요……” 하는 저주여자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쥰은 조금 창피한 듯
“됐어요.  애초에 내가 사고 난 건 아줌마하곤 아무 관계도 없어요.!”
라고 내뱉었다.


저주여자는 꾸벅꾸벅 머리를 숙이며 쥰의 쓰레기를 치우고는 마지막으로
“미안해……”
라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병실의 다른 환자들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병실 안의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쥰은
“뭐야 저 아줌마! 내가 사고 난 게 뭐가 어쨌길래. 혼자 착각하고 있어.”
라며 베개를 한 대 때렸다.


난 저주여자의 말과 행동으로 확실히 알았다.


‘확실히 저주여자는 어딘가 이상해……아니, 사과는 진심으로 하는 것 같은데’
그 여자는 저주를 건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있었다.


저주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쥰은
“그때는 진짜 무서운 존재여서 엄청 떨었었지만,
다시 대해보니까 그냥 오컬트에 빠진 이상한 아줌마라는 느낌이네.”
라며 어딘가 속이 좀 풀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렇네. 지금은 우리도 몸도 많이 크고 했으니까.” 하고 말을 맞추었다.


“자, 아무튼 정리 된 것 같으니까 나도 가볼게.”

“응, 한가할 때 또 와.”


그렇게 말을 나누고는 병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에 난 신이 떠올랐다.


신에게도 이 일을 알려줘야겠다.


녀석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 때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과 같은 축구부였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신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오오! 오랜만이야!”


그리운 신의 목소리.


난 신과 한동안 ‘요즘 어때?’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에 쥰이 사고로 입원한 이야기, 그곳의 청소부로 있던 저주여자의 이야기,
저주여자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일하고 있던 이야기 등을 해주었다.


신은 저주여자가 사과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꽤나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은


“쥰이 퇴원하면 셋이 축하파티 한번 해야지.” 라고 했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퇴원 날짜 잡히면 또 연락할게.” 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난 쥰을 찾아가


“신이 너 퇴원하는 대로 이쪽으로 온다고 파티하자던데?” 라고 전했다.


쥰은 아주 기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새 학기도 시작되고 해서 시간이 빡빡했던 것도 있고 저주여자도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줄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쥰이 전화하겠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주에 퇴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난 “다행이네.” 라는 축하의 말과 함께 저주여자에 대해서 물었지만
“뭐, 그냥……맨날 쓰레기 치우고……똑같아.” 라고 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 준이 퇴원했다.


난 하교 길에 쥰의 집에 들렀다. 벨을 누르자 목발을 짚으며 쥰이 나왔다.


“어. 들어와.”


다리에는 깁스를 한 상태였지만 아주 건강해 보였다.


쥰의 방에서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저녁이 되어 난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먹은 후에 신에게 연락을 했다.


“쥰 퇴원했어.”

“진짜?! 아, 그럼 파티 해야겠네. 당장 가고 싶은데 특활 때문에…… 이달 말 쯤에 갈게.” 라고 했다.


그리고 말일인 토요일.


나, 신, 쥰. 초등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에 셋이 모였다.


낮에 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본 신은 겨울인데도 꽤나 그을려있어서 스모키 화장이 떠오를 정도였다.


뭐 그건 그거고, 우린 저녁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학교 이야기, 연애 이야기, 옛날 추억 이야기……


물론 저주여자의 이야기도 나왔다.


당시 서로가 무엇보다도 무서워했던 저주여자도
지금에 와서는 그저 청소 아줌마.


병원에서의 일을 나와 쥰이 신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더니 신은


“그때하고는 다르니까, 지금은 그 여자한테 잡혀도 날려버릴 수 있잖아.”
라며 웃어넘겼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저주여자는 과거의 인물.


그저 옛날 기억일 뿐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저녁 시간,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오랜만에 셋이서 만난 것도 있고 해서 우리는 술을 주문해서 마셨다.


우린 각자 네다섯 잔 정도 마시고 꽤 취기가 올랐다.


신나게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지나고, 노래도 슬슬 질려갈 때쯤 신이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래, 우리 비밀기지에 가자! 해피랑 다치를 만나러 가는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도 쥰도 할말을 잃었다.


설마 거길 가자고 할 줄이야, 생각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신은 그런 우리를 놀리듯이
“너희는 여전하구나. 진짜로 겁먹었네. 큭큭”
하며 짓궂게 건드렸다.


그 말에 취해있던 쥰이 발끈하여
“뭐?! 누가 겁먹었다고 그래?! 시비 거는 거냐 지금?” 하고 맞받아쳤다.


난 취한 상태였지만 둘을 다독이려
“야 야, 그만해! 쥰 아직 목발 쓰고 있다고.” 하고 말리자 신은 곧바로
“하긴, 그래 갖곤 도망도 못 치겠네. 흐흣.” 하고 꽤나 심한 농담을 했다.


쥰은 더더욱 발끈해서
“입다물어! 가면 될 거 아냐! 너희야말로 가다가 쫄지마라!”
하고 완전히 어린애 싸움처럼 번져서는
결국 해피랑 다치의 명복을 빌자는 명목으로 가게 되었다.


신도 쥰도 취해있어서 서로 오기를 부린 것이 컸다고 생각한다.


뭐, 해피랑 다치를 찾아가 보는 일은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셋이서 가면 무서움도 덜할 것이고.


노래방을 나와 편의점에 가서 그 두 녀석이 정말 좋아했던 막대과자와 콜라를 샀다.


택시를 타고 일단 우리 집에 들러서 손전등을 챙겨
초등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택시기사에게 수상해하는 눈길을 계속 받으며 산 입구에서 내렸다.


난 셋이서 자주 같이 놀았던 뒷산이라는 그리움과 동시에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쥰은 의기양양하게


“자, 가자!” 라고 목발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신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손전등으로 앞길을 비추며 걸었다.


나는
“쥰, 조심해서 올라가” 하고 신의 뒤를 따랐다.


막상 산에 들어가니, 전과 풍경이 달라져 있는 것에 놀랐다.


아니, 풍경이 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커져서 풍경이 달라져 보이는 건가?


오르던 중에 신이 쥰을 놀리는 듯이
“저주여자가 있으면 어떡할 거야? 난 너 놔두고 도망갈 건데”
라며 또 다시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올라가서 30분 정도 만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


그 장소……처음으로 저주여자와 만난 장소.


우린 말이 없어진 채로 불빛을 비추며 그 나무에 가까이 갔다.


그 날 저주여자가 저주의식을 하고 있었던 그 나무.


가까이 가서 빛을 비추어 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박혀있지 않은 보통 나무였다.


하지만 오래된 못 자국은 남아있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마 경찰이 모두 뽑은 것이겠지.


한동안 셋이서 못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신이
“여기에서……해피가 죽었지……” 라며 땅을 비추었다.


당연히 해피의 시체는 없었지만 우린 해피가 죽은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


난 그 자리에 막대과자와 콜라를 놓았다.


그리고 셋이서 합장을 하고, 다음은 다치가 죽은 비밀기지 자리로 향했다.


비밀기지에 가던 도중에 쥰이
“별 일이 다 있긴 했지만, 그립긴 그립다.” 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이
“응, 그날 비밀기지에서 자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라고 말했다.


하긴, 이 산에서 저주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산은 우리에게 있어 성지였다.


“이쯤이었지?” 신이 멈춰 섰다.


비밀기지가 있던 자리엔 기지의 흔적조차 없었다.


그날 산산이 부서져있던 나무판자조차 지금은 하나도 없었다.


쥰이 그 자리에 막대과자와 콜라를 놓고는 합장을 했다.


나와 신도 합장을 했다.


잠시 동안 묵념을 하고 신이 말했다.


“해피랑 다치가 없었다면……지금 우리도 없었겠지……”

쥰: “……응……”

나: “그렇네. 저주여자도 달라졌고, 이제서야 겨우 끝난 느낌이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문득 신이 주변을 비추며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여기, 그 때는 우리만 아는 곳이었는데. 오는 사람 꽤 많은가 봐.”


신이 비추는 곳엔 과자봉지나 캔 등이 꽤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러게. 그 때는 쓰레기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여기 초등학생들 이 자리 아는 건가?”


쥰이 이어서
“우린 그때 쓰레기 꼭 다시 챙겨서 가져갔었는데.” 라고 말했다.


그 때 신이


“…!!......뭐, 뭐야 이게!!?” 하고 소리쳤다.


나와 쥰은 그 소리에 놀라 신이 비추는 불빛의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나무에 무언가 쓰레기가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과자봉지와 캔, 잡지가 나무에 못박혀있었다.


“……뭐야 이게……”


신이 불빛을 비춘 채로 가까이 갔다.


나도 쥰도 뒤를 따랐다.


“누가 장난친 건가?”


난 열심히도 못박아놓은 쓰레기들을 보았다.


그때,


“히익!!......이……이거……내, 내 쓰레기!……”


라고 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굳어버렸다.


“뭐!?”


나랑 신이 다시 물었다.


“내……내가 병원에서 버린!……”


쥰은 그렇게 말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신이
“야, 정신차려! 설마 그럴 리가!!” 라고 소리치며 못 박힌 과자봉지 하나를 뜯어냈다.


그걸 보고 쥰은
“으어어……으어어어!!......”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 행동에 나와 신은 순간 멍해졌지만 다음 순간
“으앗!!”하며 신이 들고있던 봉지를 던졌다.


응? 하고 그 봉지를 보았더니
봉지 뒷면에


쥰 저주한다 죽어라


하고 매직으로 쓰여있었다.


난 설마 하면서 나무에 박혀있는 쓰레기들을 싹 다 뜯어내어 뒷면을 보았다.


쥰 저주한다 죽어라 쥰 저주한다 죽어라 쥰 저주한다 죽어라


모든 쓰레기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쥰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로 굳어있었다.


신이 주변에 흩어져있는 쓰레기들을 주워
“야!......이거 봐……”
하며 내게 내밀었다.


쥰 저주한다 죽어라


주변에 떨어져있는 쓰레기들에도 쓰여있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저주여자는 전혀 달라져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우릴 원망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병원에서 본 고무장갑을 끼고 분리수거를 하던 모습도 쥰의 쓰레기만을 골라내고 있는 중이었던 거다.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것도 전부 거짓말.


난 그 순간 엄청난 한기를 느끼고
‘여기에서 얼른 빠져나가야 해!’ 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어


쥰에게
“야, 정신차려! 빨리 가자!” 하고 소리쳤지만


“내……내……쓰레기!......” 하고 쥰은 이미  정신이 나가있었다.


일단 신과 둘이서 쥰을 들쳐 메고 산을 내려왔다.


그 뒤로 8년.


물론 그 뒤로 그 산을 다시 찾은 적은 없다.


저주여자와도 만나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를 원망하고 있는 건지, 어디선가 우릴 보고 있는 건지.


하지만 우리 셋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다만……아직까지 쥰은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그리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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