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괴담] 여관에서 낸 구인공고. ssul

오링어 2021. 9. 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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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서 낸 구인공고

딱 2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나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알바 자리를 찾고 있었다.

꽤나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날이었고, 나는 이리저리 구인 정보를 뒤적거려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전화를 거는 곳 마다 거절당했다.

오래되어 해진 다다미 위에 대자로 누워서,
대충 어디서 주워온 구인 정보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불경기구만..

그때 나는 절전하려고 밤까지는 방에 불을 꺼 놓고 살았다.

불이 꺼진 어스름한 방에 노을 빛이 스며들었다.

빛을 차단한 창틀 모양이 마치 어두운 십자가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멀리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울리고,
눈을 감아보니 다른 방에서 저녁 식사 차리는 냄새가 났다.

"컵라면이 있었던가.." 나는 몸을 일으켜, 구인 정보지를 정리하려고 하던 그때 문득 펼쳐진 페이지가 보였다.

그 페이지에는 어느 현에 있는 여관에서 알바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곳이 마침 여행가려던 지역이었는데,
조건은 여름 동안만 하는 거라 알바비는 그닥.. 아니 정말 짰다.

하지만 숙식 제공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며칠 동안 컵라면만 먹는 생활을 보낸 참이니
제공되는 식사로 손수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다 가고 싶었던 지역.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감사합니다! ○○여관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 드리는데 아직 알바 모집하시나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같아............"

전화 접수 받는 사람은 젊은 여성인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로 대화하는 사람은 낮은 목소리의 남자(아마도 여관 주인?)였는데 둘이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괜시리 두근거리며 보이지도 않을 텐데 무릎까지 꿇고 앉아서 기다렸다.

이윽고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 바꿨습니다. 알바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구인 정보지에서 보고 연락 드렸는데요. 잘 부탁 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 드리고 싶네요. 언제 오실 수 있나요?"

"저는 날짜는 상관 없습니다"

"그럼 미안하지만 내일부터 당장 오셨으면 하는데요. 죄송한데 성함이?"

"카미오(가명)입니다"

"카미오요. 빨리 오세요"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아 정말 운이 좋았어!

나는 전화 내용을 잊지 않도록 녹음하는 습관이 있다.

다시 전화 내용을 들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메모했다.

숙식 제공이기 때문에 의료보험증도 필요할 지도 몰라서 그것도 가져가기로 메모했다.

여관 구인 공고가 실린 페이지를 보니 여관 흑백 사진이 실려 있었다.

고즈넉해보이지만 자연으로 둘러싸인 좋은 곳이었다.

나는 알바가 정해진데다, 가고 싶었던 지역이라 안심됐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뭔가 내 콧노래조차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날은 완전히 저물어, 열어둔 창을 통해 눅눅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나는 라면을 먹으며 뭐가 이상했는지 깨달았다.

조건도 좋고, 돈을 벌며 여행도 할 수 있다.

여자애도 같이 일한다.

혹시 모르지, 여관 투숙객이랑 사귀게 될 지도.

그런데도 뭔가 이상하다.

바깥이 어두워져서 내 얼굴이 창에 비쳤다.

왠지 즐겁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풀이 죽어 있었다.

창에 비친 삭아보이고 생기 없는 내 얼굴을 계속 바라봤다.

다음 날, 나는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깼다. 눈물이 났다.

감기라도 걸렸나?

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이를 닦았다.

잇몸에서 피가 흘렀다.

거울로 내 얼굴을 봤다.

움찔 놀랐다.

내 눈가에 펜으로 그린 것처럼 다크서클이 생겼고, 얼굴이 창백했다.

알바 가지 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저녁에 갈 준비를 다 마쳤다.

그런데 갈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 ○○여관인데요. 카미오 씨 계신가요?"

"네, 접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컨디션이 나쁘신가요? 죄송한데 목소리가.."

"아, 죄송합니다. 지금 막 일어난 참이라서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 도착하시면 온천에 들어가도 돼요.

첫날은 느긋하게 보내세요. 그렇게 바쁜 건 아니라서"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친절한 전화여서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나니 오한이 들었다.

문을 여니 현기증이 났다.

"이, 일단.. 여관까지 가기만 하면..."

나는 길가던 사람이 뒤돌아볼 정도로 비틀거리며 역까지 갔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어서 역까지 비에 젖으며 갔다.

기침도 심하게 났다.

"...여관에서 쉬고 싶어..."

나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역까지 가서 티켓을 끊었다.

그때 내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삐쩍 말라 있었다.

젖었지만, 뭐랄까.. 노인 손처럼 갈라져 있었다.

"병인가... 여관까지 제대로 도착해야 할 텐데.."

나는 손잡이에 매달리듯해서 겨우 계단을 올라갔다.

여러 번 쉬면서.

열차가 올 때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나는 벤치에 쓰러지듯 앉아서 숨을 골랐다.

목소리도 갈라졌다.

발 다리가 저려왔다.

두통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쿨럭 쿨럭! 기침을 하니 발치에 피가 흩뿌려졌다.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피가 흥건했다..

나는 흐릿한 눈으로 플랫폼을 봤다.

"빨리.. 여관으로..."

드디어 열차가 큰 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문이 열렸다.

승하차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겨우 겨우 일어났다.

허리가 아팠다.

비틀비틀 승강구로 향했다.

온 몸이 아팠다.

저 열차에 타야...

그리고 승강구에 손을 얹은 순간,

열차 안에서 귀신 같은 형상을 한 할머니가 달려왔다.

나는 떠밀려서 플랫폼에서 굴렀다.

할머니도 비틀거렸지만 다시 날 공격했다.

나는 할머니와 맞붙어 싸웠다.

슬프게도 할머니 상대로 싸울 정도의 힘이 내 팔에 없었다.

"왜 이래요! 전 저 열차 타야 한단 말이에요!"

"어째서?! 왜?!"

할머니는 내 위에 걸터 앉아서 내 얼굴을 움켜쥐고 땅에 누르며 물었다.

"여, 여관에 가야 하는데!"

역무원들이 달려와서 우리를 떼 놨다.

열차는 이미 가버렸다.

나는 일어서지도 못 하고, 사람들 틈에 주저 앉아 있었다.

떼내어진 할머니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넌 지금 씌여 있어. 위험했다고"라고 말하더니 떠났다.

역무원의 질문 두어가지에 대답했더니, 이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역을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점점 몸 상태가 좋아졌다.

목소리도 되돌아왔다.

거울을 보니 혈색이 좋았다.

나는 신기해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짐을 내리고 담배를 피웠다.

진정하고 나서, 미안하지만 역시 거절하자 싶어 여관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가벼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눌러보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번호로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나는 통화 내용을 녹음했던 게 기억나서 돌려보았다.

"......감사합니다! ○○여관입니다"

나는 한기가 느껴졌다.

분명 젊은 여자였는데, 낮은 남자 목소리로 바뀌어져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 드리는데 아직 알바 모집하시나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같아............"

응?? 뭔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되감아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데.........."

되 감았다.

"....워.......... 같아....."

되 감았다.

"ㅜ워...... 얼..... 같아"

되 감았다.

"추워.... 얼 것 같아..."

어린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 많은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악! 나는 식은 땀이 흘렀다.

전화기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녹음 내용이 계속 흘러나왔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 드리고 싶네요. 언제 오실 수 있나요?"

"저는 날짜는 상관 없습니다"

나도 기억 나는 내용이다.

나는 분명 아저씨랑 이야기를 했을 터인데,

녹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노인 목소리였다.

"카미오요. 빨리 오세요"

그리고 통화가 끊어졌다.

밖에선 억수같은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꼼짝 못하고 있다가 한참 후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 녹음은 계속 흘러나왔다.

아침에 걸려왔던 전화였다.

그런데 통화 내용은...

.........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네, 접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아, 죄송합니다. 지금 막 일어난 참이라서요"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 코드를 뽑았다.

내 손에 구인 정보지가 들려 있었다.

덜덜 떨며 어제 본 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깨끗한 잡지였는데 그 여관 페이지만 쭈굴쭈굴하고, 큰 얼룩처럼 탄 자국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 페이지만 낡은 종이 같았다.

마치 수십 년 전에 발간된 잡지처럼.

그리고 완전 불타서 망가진 여관 사진이 있었다.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사망자 30명 이상. 부엌에서 인화한 것으로 파악됨.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소사체가 부엌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요리하던 중 불꽃이 튄 것으로 여겨짐.

투숙 중이던 투숙객들도 미처 도망치지 못 해 불길에 휩싸여 소사.

이거 뭐지... 구인 정보가 아닌데...

나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구인 정보지가 바람에 날려 펼쳐졌다.

나는 꼼짝도 하지 못 했다.

그때 비가 서서히 가랑비로 바뀌었다.

순간적인 정적이 날 감쌌다.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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